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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후기

by 이 장르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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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과연 얼마만큼 일치할 수 있을까. 일부의 결핍으로 인해 구 석 한편으로 미뤄져 있던 엘라이자는, 모순적이게도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의외로 입체적이다.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발견한 단면으로 전체를 평가하기 바쁘다.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발견했던 몇 가지의 단면을 모아 성급하게 일반화시키고는 아는 체를 하려 든다. 엘라이자는 세상이, 자신이 입체적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타인을 볼 때에도 입체적인 시각으로 인지 할 수 있었다.

 

의외로 모든 것은 한 번에 망가지지 않는다. 서서히, 잔잔하게 무너져 내린다. 나 자신을 가장 뛰어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다. 리처드는 타인이 원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채, 썩어 문드러져 가는 자신을 외면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인을 탓하기 바빴다. 그는 그렇게 스며들 듯 망가지고 있었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흐르는 강물에 불과하다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생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자 다르다. 시간의 흐름을 얼마나 인지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질 테니.

 

우리는 시간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시간을 난도질을 하려 든다. 시간을 지배하고 규정하고 싶은 인간의 기본값이 여기에도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한낱 쇠 덩어리에 타임머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놓곤 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망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은 손을 맞잡고 오지

 

 

 

사랑하는 것을 발견했지만, 세상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할 수 없는 존재,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누구의 입맛대로 정해 놓은 것일까.

 

어쩌면 엘라이자만이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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