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죽은 것을 취급하니까 (Because we can't sell them alive)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은 우리에게 도움인가, 도구인가.
인간은 흔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수많은 슈퍼돼지들은 실험실에서 태어나 실험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든 동물들은 자연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타의로 인해 자연을 벗어난 동물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긴 한 걸까.
수십 마리의 슈퍼돼지를 등지며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과연 해피앤딩일까 생각해본다. 물론 옥자와 아기돼지에겐 결과적으로 해피엔딩 일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 주인공에게만 국한된 해피엔딩이라니. 아마도 이것은 해피엔딩을 위한 해피엔딩, 즉 불온전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비단 돼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돼지를 넣은 것일 뿐.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는 모든 동물들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푸른 초원은 더 이상 동물들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인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존재만으로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고 믿으며, 인간을 위한 다른 종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특히, 인간이 겪는 고통에 관대한 경향이 있다. 동물들의 복지를 외치면서도, ‘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들만은 예외적으로 두는 ‘선택적 자비’는 인간의 이기심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란 무엇이며, 그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 걸까. 이쯤되면 ‘인간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동물에 대한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나치다.
-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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