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고 사랑을 시작했는데, 행복하지 않다. 당신 앞에선 가장 나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했던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옮아 매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하는 거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인생은 꽤 악명 높아서 단순히 엉켜버린 실을 푸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행복해 보여서 좋다.”
“행복? ‘행복’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야.”
러시아에서 온 그녀가 이탈리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누르고, 버렸다. 사랑이 아름다운가, 혹은 잔인한가. 한 끗 차이로 갈라지는 이 감정은, 가끔씩 사랑이란 게 인간을 괴롭게 하는 쇠사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의 잔혹함은 도대체 어디까지이길래 자기 자신을 포기하도록 몰아내는 것일까. 사실 사랑은 애초부터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가 사랑을 그런 식으로 포장해왔던 관습이 꾸준히 이어져왔던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을 잊으려 노력했고, 마침내 엠마로 거듭나면서 일시적인 자부심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년간의 노력으로 수년 동안 함께했던 키 디쉬를 덮어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엠마의 안에 숨어있던 키 디쉬는 안토니오를 마주치면서부터 다시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러시아라는 공통점으로부터, 지난날 그 어둠 속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키 디쉬는 드디어 온전히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눈빛을 만난듯했다.
그렇다면 엠마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름다운가, 혹은 죄악인가. 아니면 키 디쉬를 엠마로 밀어 넣었던 사람들의 잘못인가.
“당신이 알던 나는 없어요.”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
아니, 너는 너를 다시 찾은 거야. 엠마로부터 키디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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