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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사랑과 경멸(Contempt)’ 후기 ​ ​ 당신을 사랑했다. 당신만의 언어로 지저귀는 소리에 잠들었고, 설레는 아침을 맞이했다. 당신이 꿈꾸는 모습이 멋있더랬다.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당신의 모습은 내가 반하기에 충분했다. ​ 당신을 경멸한다. 당신만의 언어로 지껄이는 밤잠을 설쳤고, 지겨운 아침을 맞이했다. 당신의 꿈 타령하는 모습이 한심하더랬다. 자신만의 신념을 고집하던 당신의 모습은 내가 질리기에 충분했다. ​ 예상치 못한 무언가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끌어낸다. 얼마 전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우리, 영원을 약속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에게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 영원한 것은 존재하긴 할까. 영원할 것을 약속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에게 영원이란 무엇일까.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새 빛바랜 채로 .. 2021. 9. 14.
영화 :: '1987(1987:When the Day Comes)' 후기 ​ ​ 그저 평범하길 바랐다. 평범한 채로 살아남길 바랐다. 그 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시간을 기다리며, 혹여 숨소리가 들릴까 죽은 듯 살아왔다. 그저 내 주변, 나의 가족들이 다치지 않으니 그걸로 됐다. ​ 우리의 목구멍 속엔 남영동에서 굴러들어온 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돌에 막혀 조용히 내뱉던 혼잣말조차 꾸역꾸역 삼켜내야 했다. 바라는 건 오직 하나, 그저 오늘 하루도 그저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 위험에 온몸을 내던져 부딪히는 저들이, 그저 어리석어 보였다. 한낱 촛불 따위로 세상을 밝힐 수 있더라면 고통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겠지. 군화에 짓이겨지는 한낱 하루살이처럼 어이없게 삶을 끝내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 동이 튼 적 없는 이곳의 어둠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얼마.. 2021. 9. 13.
유럽 2-7.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혜와 낙오 아닌 낙오가 되고 우리는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숙소 옆을 따라 흐르는 강을 발견하고는 혜가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하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을 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혜를 따라나섰고, 우리는 쌀쌀한 강바람 내음을 맡으며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는 조금 더 쌀쌀해졌기에 그리 멀리 가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저 구름이 조금씩 걷혀 보이는 하늘이 이뻤다는 것, 우리 옆에서 흐르던 강은 에메랄드빛을 풍겨내고 있었다는 것 정도. 스위스에서 머물었던 시간은 유난히 짧았지만, 이런 스위스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눈에 담고 또 담았더랬다. ​ 우리가 호수를 따라 거니는 동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2021. 9. 10.
되돌아가도 바꿀 수 없는 결과가 있었다 부지런히 변하는 계절을 따라 공기의 향이 변하고 있다. 시간을 주로 그때의 향과 노래로 기억하는 편이라, 매 순간 돌아오는 계절의 향은 나의 기억을 머릿속에 스치기엔 충분했다. ​ 가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억에 젖어, 그땐 그랬지라는 이야기와 함께 지금 우리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곤 한다. 우린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우린 과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리고 만약 그 답이 그렇다 라면, 우리는 무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 함께 보내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추억 때문일까. 그때와 달리, 이제 노력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세상에 치여 그 시간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걸까. 그때의 순수함이라고 하기엔, 다시 지금.. 2021. 9. 9.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됐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있다. 왠일인지 눈이 일찍 떠져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 5시, 당장 일어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더 잠들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머리맡에서 풍겨져오는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말에 머리를 했던 흔적이 여전히 냄새로 남아있었다. ​ 조금 더 평범해지기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나와도 냄새는 여전히 어깨주변을 맴돌고있었다. 여느때처럼 빠르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어둠이 묻어있는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로 향했다. ​ 가끔 이렇게 변화없는 나의 삶이 두려워질때가 있다. 누군가는 덥석덥석 잘해내는것조차 꾸역꾸역 해나가는걸보면, 삶에 재능이없나 싶기도하고. 하고싶은걸 하겠다며 꾸준히 무언갈 해나가는 주변을 보면, 이도저도 아닌 나의 재능이 되려 나.. 2021. 9. 7.
영화 ::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후기 ​ ​ 세상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세상의 기준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어왔다. 결국 나는 세상에 의해 철저히 고립되었다. 당신들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곳에 들어올 일은 없었을 텐데. 부모도 외면한 나를, 누가 지키려 하겠는가. 당신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했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하늘을 향해 힘없이 디뎠던 발은 결국 그대로 멈춰버렸다. 데이지에게 잔인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회피하려 했던 현실을 되새겨준 리사였나, 아니면 데이지를 지옥 속에 가둬두었던 그녀의 아버지였던가. ​ 다시금 그녀의 흔적을 안고 제자리.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이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당신의 .. 2021. 9. 6.
유럽 2-6.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융프라우를 소개하던, 터널 컨셉으로 꾸며져있던 길을 지나 기차를 타기 위해 늘어선 줄 뒤에 나란히 이어 섰다. 하늘이 조금만이라도 맑아졌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융프라우 꼭대기의 눈보라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느낀 우리는, 일단 숙소쪽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내려가서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는사이 빨간 기차가 우리 앞에서 섰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직원분이 친절하게 다가와 표 검사를 시작했다. 형식적인 거라 다들 보여주고 직원분이 웃으며 초콜릿 하나를 건네주며 넘어갔는데, 갑자기 희 언니의 안색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언니는 가방을 다급하게 열어재끼기 시작했다. 거의 울듯한 표정의 언니는 십분정도 가방.. 2021. 9. 3.
2021. 08. 월간 글노트 구름 속에 갇힌 하늘을 며칠째 흘려보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더워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에어컨 전원 버튼보다 창문 손잡이에 손이 간다. 어제의 공기를 흘려보내고 오늘을 채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킨다. 이제 얼마 후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뜨거운 홍차를 마시고 있겠지. ​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귀찮고 성가신 것을 해나간다는 것이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오늘을 채워냈다. 생각해 보면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에 결과와 비슷한 빛이 머물러있길 바라곤 한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과정을 마주했을 때의 우리는 계획에 없던 무언가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 예상치 못한 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 2021. 9. 2.
영화 :: '홀리 모터스(Holy Motors)' 후기 ​ ​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의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 타인을 위한 시간으로 마주했던, 내 과거 시간도 온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못했다. 우리의 추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우린 도대체 언제부터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던 걸까. 우리의 삶이란 게 있긴 할까. 아니, 사실 애초에 존재한 적 없었던 걸지도. ​ 어린 시절 우리는 분명 특별함을 배워왔건만, 이유 모를 무언가에 휩쓸려 이곳까지 왔다. 평범함이란 이름 속에 억눌려있던 특별함이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가끔은 아득한 이 상태가 서글프게 느껴지곤 한다. 사라진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마주치는 가식적인 시간들. 그리고 그들의 돈과 맞바꾼 나의 아이덴티티. .. 2021. 8. 31.
2021. 07. 월간 글노트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다. 내리쬐는 땡볕에 달궈진 바닥을 걷고 있노라면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도 모자라 마스크에 막혀버린 바깥공기에 남은 여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 사실 대부분의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새벽의 내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견뎌낼 수 있던 여름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혹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엔 북적거릴 이 거리가 지금 우리 앞에 막을 내린 무대처럼 텅 비어있다는 것이 늘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채워진 몽글거리는 내음을 맡으며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설렘은 찾아오는 잠을 외면하게끔 한다. 그 설렘이 카디건 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새벽의 찬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낮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무.. 2021. 8. 30.
유럽 2-5.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융프라우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기에 대기실에 앉아 기차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여유가 생겨 카메라에 담아뒀던 사진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카톡 알람이 떴다. 흐린 날씨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이 취소됐다는 소식이었다. 취소될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확실히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으니 왠지 모르게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패러글라이딩 취소 여부를 확인하고 결정하겠다던 일행들도 기차를 타기 위해 표를 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한두 장 골라 핸드폰으로 옮겨 담고 선, 지금 출발하는 일행들에게 보냈다. 아마도 날씨가 맑지 않아 아쉬운 마음 또한 함께 묻어가지 않았을까. ​ 곧 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그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앞에 있는 일행들을 급하게.. 2021. 8. 27.
읽기 좋은 책 :: '역량의 창조' 후기 -2- ​ ​ 발전경제학계는 빈곤 문제와 사회적 약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놓고 오랫동안 내부 논쟁을 벌였다. 센은 가난을 재화, 소득, 재산의 부족이 아니라 역량 실패로 이해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했다. 가난은 다양한 요인 때문에 기회를 실현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지 소득과 깊이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배제에 시달리는 사람은 소득이 있더라도 실질적 기능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소득은 역량의 적절한 대리인이 될 수 없다. 대체로 소득은 목적의 수단이고 역량이 목적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서있는가를 그들의 소득으로 판단하곤 한다.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의 일부가 소득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소득이 그들의 모든 것을 대표할 없다. 하지만 소득은 그들이 지닌 잠.. 2021.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