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40

영화 :: '매그놀리아(Magnolia)' 후기 ​ ​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를 하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듯, 혹은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인 듯 우리는 끊임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렇게 후회를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몸부림치다가도 어느샌가 또다시 그럭저럭 망각하며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 분리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났고, 그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써 내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현재 또한 순간마다 과거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그 속도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주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에 종속된 존재라는 것이다. ​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게 좋을 거라는 말에, 사실 나는 그럴 것이라고 쉽게 동의를 할 수 없었다. 빛나는 순간이 있었.. 2021. 7. 14.
2021. 06. 월간 글노트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나쳐버린 6월이었다. 어느샌가 후덥지근한 공기로 변해버리더니 하루에 한 번씩은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듯 비가 쏟아져댔다. 또 얼마나 변덕스럽던지, 잠시 한눈판 사이에 비 내리는 걸 그만두곤 했다. ​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친 건지,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이리저리 치여버린 건지. 약속도 많지 않았고, 듣고 있던 수업도 두 번씩이나 쉬어갔던 6월이었지만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지는지. 가만히 숨죽여 실컷 가라앉아본 6월이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6월의 나는 위로받았는지도 모른다. ​ 좁은 공간에 억지로 틈을 내어 할 일을 구겨 넣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라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가. 방향을 잃어버린 .. 2021. 7. 12.
유럽 2-3.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스위스의 밤. 룸메들은 일찍 잠들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고, 함께 인터라켄 시내로 향할 일행들은 각자 방에서 짐을 간단하게 챙겨 나왔다. 시곗바늘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한국에서는 이 정도로 늦은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스위스의 열한 시는 한국의 새벽과 비슷했다. 그 누구도 집에 가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거닐고 있지 않았다. 이 거리 위엔 온전히 우리뿐이었다. 시내 쪽으로 가면 클럽이 있다는 말을 믿고 무작정 나선 우리는 꽤나 용감했던 건가보다. 다행히도 새벽을 좋아하는 나는, 숙소 밖의 차가운 공기에 조금 들떠 있었다. ​ 한국이 아닌 곳에서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는다는것이 무서울법한데도, 우리는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두렵지 않았다. 아, 어쩌면 살짝 올라온 술기운 때문인.. 2021. 7. 9.
읽기 좋은 책 :: '다시 브랜딩을 생각하다' 후기 ​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마케팅의 늪에서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버렸다. 마케팅은 왜 우리 곁에 머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 기본적으로 마케팅이란 것은 사람들이 어떠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호감으로 발전하여 재화를 구매하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이전까지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경계가 명확했지만 서서히 그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판매할 수 있는 재화는 유형의 것이어야 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판매되고 있는 무형의 재화들의 종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꽤나 긍정적 이어졌다. ​ 또한 구매를 하기 위해 지불하는 화폐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 2021. 7. 8.
영화 :: '동경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후기 ​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오랜 기간 스며들어 마치 배경처럼,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것들. 여전히 그대로인가 보다. 머리로는 수없이 되뇌고 선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모습을 문득 깨달을 때면. 많은 것이 변해가는데도 말이다. ​ 우리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순간에 머물러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그 시기를 기억한다.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서로를 그 시기에 고이 넣어두고선 가끔씩 꺼내본다. ​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 막연하게 어른을 동경했던 것 같다. 점점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른이라는 .. 2021. 7. 6.
영화 :: 로프(Rope) 후기 ​ ​ 우리는 로프를 쥐고 있는가. 아니, 누군가를 재단할 로프를 쥘 자격이 있는가. ​ 완벽이란 없다. 누군가를 재단할 수 있는 완벽을 지닌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재단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당신이 쥐고 있는 로프는 사실 당신의 것이 아니며, 당신의 판단하에 누군가에게 로프를 들이미는 행위는 당신의 오만을 나타낼 뿐이다. ​ 자신의 세상이 가장 좁은 이들이 타인의 세상을 재단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세상 자체가 좁아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부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어떠한 여분의 가능성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결국 로프를 탐내는 이들은 대체로 이러한 경향을 지닌 이들이다. ​ 온전히 이성적일 수 .. 2021. 7. 5.
읽기 좋은 책 ::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타인에 대한 연민' 후기 -3- ​ 어린아이들은 기아나 질병, 삶의 각종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성적 사고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못생기고 불구인 짐승, 도깨비, 마녀,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에게 두려움을 투사하고,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면 삶이 더 안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마녀들은 혐오스럽고 역겨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당신이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인류는 끊임없는 무지의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혹은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면서도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알다시피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외면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당장의 급한 불을 끄듯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낸다. ​ 지배계층은.. 2021. 7. 1.
영화 :: '킬링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 후기 ​ ​ 영원히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안겨준 고통이 영원한 것처럼, 당신에게도 영원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낱 실수라는 이름으로 묻혀버린 당신의 과오가 내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망쳐버렸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아니 당신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잊혔겠지. ​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나의 기억에 가둬놓고선 잊어버린다. 그렇게 기억의 방에 갇힌 사람은 영원히 그 기억 속에 갇혀 살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막상 그 문을 열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나를 가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 정의란 무엇일까. 아니, 정의란 것이 존재하긴 할까. 어쩌면 그저 누군가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적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이 힘없는 사람이 당신들의 .. 2021. 6. 29.
다큐멘터리 :: '인사이드 차이나(Inside China) - 신장 위구르(新疆维吾尔自治区)' 후기 ​ 최근 신장 위구르족의 인권 문제가 화두로 올라오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 신장위구르 지역을 비롯한 중국의 소수민족의 차별은 오랜 기간 자행되어왔지만, 국제사회에서 묵인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행보는 '하나의 중국', '일대일로'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을 삼켜버리기 위한 시도가 많았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중국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 물론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제야 시작된 것은 비난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들은 지독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주로 결정을 이뤄내왔고, 중국과의 협력이 자국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지금까지의 중국의 활동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신분증에 자신의 출신 민족을 기입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족이.. 2021. 6. 28.
유럽 2-2.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테이블에 올려둔 음식들이 조금씩 식어갈 무렵, 우리의 기념사진촬영도 끝이 났다. 한국인답게 초가 가져온 햇반과, 혜가 가져온 컵라면을 메인으로 하고, 좁디좁은 테이블 가운데에 넘치도록 놓인 치킨과 피자를 반찬으로 삼아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테이블 옆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스위스의 풍경을 배경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네 명은 모두 동갑이었고, 우리 나이에 할 법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고민들을 나누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 거의 모든 가게가 일찍 문을 닫는 스위스였기에, 우리는 내가 챙겨온 카누와 아까 마트에서 사 온 초콜릿으로 후식을 대신하기로 했다. 아까 분명 내가 마트에서 초콜릿만 3만 원어치 산다고 놀랐던 셋이었지만, 후식으로 초콜릿 몇개를 꺼내 먹어보고 나서는 이렇게.. 2021. 6. 25.
노력이 가끔 배신해서 가끔 노력했다 퍽퍽했다. 삶이라는 게 원체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나도 내 인생이 처음이라,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드는 순간의 연속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며 떠밀려갔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는지, 이제는 내 스스로 나를 등 떠밀고 있었다. 등 떠밀려가지 않으려 노력하던 게 몇 년 전 같은데, 지금은 내가 나를 밀어내고 있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다. ​ 슬슬 더위가 찾아오고 있다. 계절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잊을만한 때쯤 갑작스러운 더위로 우리를 놀래주곤 한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흘러버렸구나.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분명 나름대로는 열심히 쌓아갔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손에 잡히는 건 없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허무해야 하는 걸까. 남들처럼 허무함을 느끼고, 내.. 2021. 6. 24.
영화 ::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 후기 ​ ​ 비옥했던 땅이었지만 하나둘 떠나면서 황폐해진다. 건조해지고 퍽퍽해진다. 사막이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은 얼마나 퍽퍽하고 건조해진 것일까. 또 어떤 것이 나를 떠나갔을까. 이런 생각조차 들기도 전에 이미 나의 삶은 사막으로 변해갔다. ​ 모래먼지 속에 떨어진 이방인이 바람을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 당연하게 견뎌가고 있던 나의 삶을, 마치 틀린 것 고치듯 이것저것 바꿔놓기 시작했다. 불쾌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의도에서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런 태도가 불편하고 불쾌할 뿐이었다. ​ 사실 변화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도, 원하지도 않는 순간에 불쑥 나타나버리곤 한다. 의도치 않은,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유.. 2021.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