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여운

영화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 후기

이 장르 2020. 9. 2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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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다울까, 혹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그 대답을 이미 알고 있고 그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건지, 혹은 외면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내던지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오필리아는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잔인한 세상을 오롯이 받아내며 그 누구도 도와주거나 보호해주지 않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언덕이 무너져 내리면서 모든 것을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할 때, 나는 과연 모두 감당해낼 수 있을까.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겠지만, 현실은 동화 속 세상과 달라.

냉혹하고 잔인하지. 때론 고통도 받아들여야 돼.

 

동화는 자비 없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기에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맞춰 픽션을 만들어내고, 또 누군가는 타인의 희망을 팔아 돈을 번다.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꾸준히 아름다움을 갈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은 사실 이득을 보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낸 신기루일 수도 있고.

 

세상은 달콤한 것을 실컷 전시해두고는 맛보려 하면 가차 없이 잡아먹으려 한다. 그들에게 누군가의 온도는 상관 할바가 아니었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 이 상황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잡아먹혀 수북이 쌓여있는 아이들의 신발 중에, 우리의 신발도 한 짝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

 

 

비현실적인 망토를 두르고 현실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판타지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잔혹할 수 있는 요소들조차 판타지로 덮어버리면 한층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니.

 

어쩌면 판타지라는 장르는, 일종의 표현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우리가 깨닫고 싶은 것에 대한 답을 듣게 되지 않을까.

 

 

그녀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아는 자들에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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