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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Project 2023

🇦🇺기다림 끝, 그리고 의외의 답변

by 이 장르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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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T에게 제안 파일을 보내두고 나서 출근을 했다. 하지만 퇴근을 하고도, 화요일이 지나도 답변조차 없던 T. 어차피 수목 시프트가 겹쳐있으니 보게 될 테니 별말 안 하기로 했다. 이게 하루 이틀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내년까지 가야 하는 프로젝트인데 새로운 일을 구하고 여길 떠날 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할 테고 생활패턴도 바뀔 테니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전보다 늘어났음을 알기에.

수요일 출근을 하고 T를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했더니 T도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대뜸 나에게 와선 보낸 메시지 확인했다고 말을 하더라. 근데 본인이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나는 이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더랬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별말 없이 마감까지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러다 마감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대뜸 T가 전시회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먼저 이렇게 물어볼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나로선 당황스러우면서도 들뜨더라.

대략적인 전시 방향을 설명해 주고 선 본인이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년 5월부터 1년간 멜버른을 떠날 예정이라더라. 걱정 마 나도 사실 내년 2월부터 5월까진 멜버른에 없어. 이랬더니 '아 진짜?'하면서 좀 놀라더라. 내가 여길 떠날 거라곤 생각 못 했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내 개인적인 얘길 잘 안 하는 편이기도 하고, 여긴 뭘 얘기하려 해도 영어를 써야 하니 더 말을 안 하게 되기도 하고.

나 비자 연장해야 해. 아마도 공장 아니면 북부 쪽에 호스피탈리티 일하러 갈 것 같아.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그럼 일단 오스트레일리아엔 계속 있는 거네? 지역만 다른 곳으로 가는 거지? 응. 연장 조건 채우면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올 것 같아. 사실 저번에 여행으로 시드니를 다녀온 이유 중 하나가 지역 이동을 하게 되면 시드니는 어떨까 했다. 시드니도 참 좋은 도시지만 나는 멜버른이라는 도시가 더 좋았다. 아마 나는 호주에 있는 동안은 멜버른에서 벗어나진 않겠구나.

결국 디테일한 부분은 또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주겠다 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한텐 영어로 설명하는 게 되던데 왜 원어민들한텐 왜 난도가 더 올라가는 걸까. 또다시 할 일이 생겨버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파일을 만들어가면서 내 머릿속에 정리되어가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걸 알기에 고생임을 알면서도 또다시 파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너도 아직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지만 나 또한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걸.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봤지만 아직 확실하게 답변을 들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그다음 날 출근해서 일하다 둘만 있을 시간이 있길래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생각할 시간 필요하다 하면 일주일 정도 생각하라 하지 뭐. 그렇게 T를 불러, 너 내가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나랑 같이할래? 했더니 I think so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사실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한데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라고 하더라.

사실 얘가 같이 안 한다 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더랬다. 파일을 다 만들고 나서도 이 파일을 보낼까 말까 여러 번 망설였다. 정말 한국에서는 걱정할 일은 많았지만 걱정을 잘 안 했던 나인데 이곳에서는 모든 게 새롭고 처음이다 보니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낯섦에서 오는 걱정들을 새삼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T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나 네가 같이 안 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고.

그날 너무 기분 좋아서 런치 퇴근하고서 기념으로 살몬스테이크를 먹었다. 바깥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여전히 햇살은 익숙지 않아 그늘 있는 테이블에 자릴 잡고 앉았다. 사람들이 여기 앉는 이유가 있구나. 여기 너무 좋다. T가 저 멀리서 씩 웃으며 내 살몬스테이크랑 포크 나이프를 들고선 내 앞에 놔줬다. T의 점심시간과 내 퇴근시간이 같아서 점심 먹으러 집 가는 길에 들고 나와줬나 보다.

스탭밀 테이크아웃박스를 든 T가, 너 내일 일해? 응. 몇 시부터? 12시부터. 아 그럼 나 다른 일 가기 전에 나 점심 먹으러 올 것 같아.

살몬스테이크를 먹으러 오겠다는 T와 인사를 하고 선 한시름 덜어낸 오늘 하루를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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