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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106

하염없이 가라앉는 날,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유난히 흐린 하늘로 머물어있던 날이다. 그러다 방심한 사이, 침대 머리맡으로 흘러내려오던 햇살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침대에서 내려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배갯면 움푹 패인 곳에 고여들 무렵, 짙은 구름 틈으로 보이던 하늘빛도 이내 자취를 감췄다. ​ 멜버른의 하늘은 늘 이런 식이다. 어느 날은 구름 한 점 보여주질 않다가 또 다른 날은 어디에 숨겨뒀는지도 모를 그 많은 구름들을 품고와 하늘을 가득 메워버리곤 하더라. ​ ​ 잊고 지냈던 모든 것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상하리만치 오랜 시간 느끼지 못했던 그리움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그리움과 눈물을 맞바꿀 때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 2024. 3. 3.
한번 젖은 옷은 더 이상 젖지 않았다 애매한 더위와 시원함이 공존하고 있는 계절이다. 호기롭게 쉬엄쉬엄 보내보겠다던 이번 달은 역시나 정신없이 지나쳐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감사한 마음들에 뭉클해져 잠시 멈춰보기도 하고, 또다시 밀려오는 조급함에 다시 아등바등 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난 오래 놀고먹는 건 못하겠다 싶었다. ​ 생각해 보면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를 맘껏 써본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렇게 보니 이런 순간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을 떠남과 머묾, 그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나날들도 곧 끝이 나겠지. ​ 한번 젖은 옷은 더 이상 젖지 않았다. 축 늘어져 버린 옷의 무게를 감당해야겠지만 손과 발이 자유로이 춤추는 이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스러운 인간.. 2022. 6. 16.
멈춰버린 도덕 당신의 세대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그리고 그 업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당신들이 일궈온 땅에서 우리 세대는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지금 세대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당신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지 않는다 해서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당신의 세대가 성실함이라는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졌다면, 우리의 세대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방식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내는 방식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고민하는 행위란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가시적으로 보였던 당신 세대의 .. 2022. 5. 12.
눈을 감아도 생각은 감기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생각이 감기지 않던 밤이다. 불 꺼진 방안에 시간을 알려주던 빛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잊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나 어리석다는 걸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더랬다. 그렇게 새삼스러움에 몸서리쳐지던 밤이구나. 오늘의 너와 내일을 기약하는 나에게 그 기나긴 줄의 끄트머리를 내려놓는다. ​ 멀리서 들려오던 메아리에는 무던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로 먹먹해져온다. 그렇게 낯설어진 오늘에 빠르게 흘러가는듯한 시간에 문득 두려워진다. 한때 스쳐 지나갈 숫자 따위로 여기기엔 새겨진 의미는 생각보다 꽤 깊었나 보다. ​ 생각해 보면 자연의 순리라던 게 이토록 잔인한가 싶을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날카롭게 들려오는 밤이다.. 2022. 5. 4.
함께했던 시간들 사유를 성가신 존재로 바라보던 이들 사이에서 홀로 품어본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더 외롭게 했다. 그러던 중에 시작했던 시나리오 수업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직은 가진 게 시간뿐이라, 살아가기 위해 그 시간조차 팔아야 했던 나의 삶에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로 막혀가던 숨통을 조금씩 트여가고 있었다. 그저 내 글이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단 생각에 벅차오르던 감정으로 시작했던 수업이 이렇게 위안이 되어 줄줄이야. ​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면서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모순적인 나를 한 번도 이상하게 보지 않으셨다. 얼마 전 우연히 들춰보고선 한없이 부끄러워졌던 수업 초반의 과제들을 받아보시고도 그 어떤 평가조차 하지 않으셨다. 오랜 시간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명확.. 2022. 3. 25.
불편한 변화 우리는 수많은 변화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어떠한 변화를 수없이 고대해 왔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러한 변화 자체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회구성원 중 과반수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에 이러한 과도기를 마주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 점점 나은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하려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취업을 하고, 좀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졸린 눈을 다시금 부릅뜨며 자기계발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점차 나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간혹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회.. 2022. 3. 17.
가끔 인생은 선택이 아닌 포기의 연속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시름시름 앓아가던 나날들을 매듭짓고 또 다른 나날들을 준비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래 살지도,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은 그 애매함 속에서 어설프게 해내던 선택이 결국 실패했다. 예전보다야 안목이란 게 나아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빠져 자신만만할 때 즈음 이렇게 한 번씩 넘어지는 것은 여전히 낯설 뿐이다. ​ 숨통을 옥죄었던 나날들이었다. 당연한 것을 내세우는데도 어느새 하나의 객기로만 여겨져버린 나의 공허한 목소리는 그렇게 매 순간 사라져버렸고, 그렇게 열정도 의욕도 가라앉아버렸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죽여갔던 마지막 순간이 너무나 오래전이라 기억조차 나질 않았는데, 또다시 이런 감정에 사로잡히게 될 줄이야. 확실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22. 3. 14.
리더의 무지가 미치는 영향 평생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십은 무언가를 해냄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리더의 말과 행동, 가치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그들의 결정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꾸준히 관찰할 수 있다. ​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나이를 먹음으로써 자연스레 리더의 자리로 올라가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능력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능력보다는 나이를 우선시하여 리더를 세운다는 모순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습은 쉽사리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 노력 없이 얻은 나이만으로 리더의 위치에 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 전까지는 그 위치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들이지 않.. 2022. 3. 8.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었다 추위가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 호기롭게 목도리를 두르지 않고 마주한 오늘 아침 바깥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저 무뎌졌을 뿐, 사라지진 않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섣부른 판단에 옷을 다시금 주섬 거리며 여몄다. ​ 나는 어리석게도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여 걸쳐 꾸역꾸역 경험했더랬다. 나뿐만 아닌 모든 이들이 이런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는 그 누구의 위함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싶은 마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었다. 당신이 말하는 좋은 의도조차 타인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걸.. 2022. 3. 3.
사유 없는 열정 사회적으로 열정의 존재는 비판 없이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열정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사회는 왜 열정을 긍정적인 요소로 규정하였는가에 대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역사를 볼 때에 누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이 홀로 해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때 열정을 교묘히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열정이란 이유만으로 당연시되어버린 것들이 상식으로써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들조차 쉽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 독일 사람들에게 사유를 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그들의 분노를 이용해.. 2022. 2. 16.
때로는 그때가 좋았지 보다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날이 풀리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나긴 겨울이 벌써 희미해지고 있다. 며칠 전까지 쌓였던 눈은 땅으로 파고들어가 또다시 잠들 채비를 하고 있는듯했다. 한순간 사라져버린 우리의 추위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한 것처럼 낯설어하고 있었다. 기다렸지만 매번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이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우리의 인생은 아날로그,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끊어버릴 수 없는 그런 존재. 우리는 결국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 아니, 사실은 새롭다기보다 그저 다른 숫자를 적어 라벨을 붙여둔 것뿐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늘어가는 숫자에 집착해버리는 삶이 되어버렸다. ​ 언제부터 우리는 당연하다는 말로 수많은 소홀함을 합리화했을까. 얼마나 많은 무심함을 흩뿌리고 다녔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고서.. 2022. 1. 25.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한 번쯤 한국을 벗어난 삶을 꿈꾸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에서 벗어난 삶을 원하는 걸 테지만 말이다. 어디에서 살고 싶다는 명확한 계획 없이 막연한 바람을 가져보곤 한다. 지금과는 다른 환경,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기대를 해보게끔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 아메리칸드림이란 것은 사실 미국이 황폐한 땅을 비용 없이 가꾸고 인구 또한 늘리기 위한 하나의 수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이러한 속셈을 숨겨둔 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의 땅'으로 마케팅을 하는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인구증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수많은 문화가 유입되면서 융합되지 못한 채 발생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2022.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