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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135

하염없이 가라앉는 날,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유난히 흐린 하늘로 머물어있던 날이다. 그러다 방심한 사이, 침대 머리맡으로 흘러내려오던 햇살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침대에서 내려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배갯면 움푹 패인 곳에 고여들 무렵, 짙은 구름 틈으로 보이던 하늘빛도 이내 자취를 감췄다. ​ 멜버른의 하늘은 늘 이런 식이다. 어느 날은 구름 한 점 보여주질 않다가 또 다른 날은 어디에 숨겨뒀는지도 모를 그 많은 구름들을 품고와 하늘을 가득 메워버리곤 하더라. ​ ​ 잊고 지냈던 모든 것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상하리만치 오랜 시간 느끼지 못했던 그리움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그리움과 눈물을 맞바꿀 때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 2024. 3. 3.
한번 젖은 옷은 더 이상 젖지 않았다 애매한 더위와 시원함이 공존하고 있는 계절이다. 호기롭게 쉬엄쉬엄 보내보겠다던 이번 달은 역시나 정신없이 지나쳐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감사한 마음들에 뭉클해져 잠시 멈춰보기도 하고, 또다시 밀려오는 조급함에 다시 아등바등 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난 오래 놀고먹는 건 못하겠다 싶었다. ​ 생각해 보면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를 맘껏 써본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렇게 보니 이런 순간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을 떠남과 머묾, 그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나날들도 곧 끝이 나겠지. ​ 한번 젖은 옷은 더 이상 젖지 않았다. 축 늘어져 버린 옷의 무게를 감당해야겠지만 손과 발이 자유로이 춤추는 이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스러운 인간.. 2022. 6. 16.
멈춰버린 도덕 당신의 세대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그리고 그 업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당신들이 일궈온 땅에서 우리 세대는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지금 세대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당신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지 않는다 해서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당신의 세대가 성실함이라는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졌다면, 우리의 세대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방식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내는 방식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고민하는 행위란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가시적으로 보였던 당신 세대의 .. 2022. 5. 12.
눈을 감아도 생각은 감기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생각이 감기지 않던 밤이다. 불 꺼진 방안에 시간을 알려주던 빛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잊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나 어리석다는 걸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더랬다. 그렇게 새삼스러움에 몸서리쳐지던 밤이구나. 오늘의 너와 내일을 기약하는 나에게 그 기나긴 줄의 끄트머리를 내려놓는다. ​ 멀리서 들려오던 메아리에는 무던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로 먹먹해져온다. 그렇게 낯설어진 오늘에 빠르게 흘러가는듯한 시간에 문득 두려워진다. 한때 스쳐 지나갈 숫자 따위로 여기기엔 새겨진 의미는 생각보다 꽤 깊었나 보다. ​ 생각해 보면 자연의 순리라던 게 이토록 잔인한가 싶을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날카롭게 들려오는 밤이다.. 2022. 5. 4.
코로나 확진 기록 6일차 :: 격리 마지막날 내일이면 격리가 끝나고 또다시 출근을 해야한다니. 아픈상태로 남아있는게 좋은건아니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더 보내보고싶은 마음이들었다. 시간은 여전히 팔을 뻗는 속도보다 빠르게 달려가고있었고, 나는 때론 버겁게 느껴지는 그 속도를 흉내내보려 하고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말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홀로 머무는 시간에서 분명 얻어갈수있는개 여전히 남아있지않나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선택할수있지만 선택에 대한 답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했다. 하고싶은것만 할수없음을 알면서도 하고싶은 것을 선택하지못한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나는 온전한 내 삶을 살아가고있을까. 아니, 살아낼수있는 삶의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일까. 어쩌면 아직 가야할길이 멀기에 선택지의 다양성과는.. 2022. 4. 21.
코로나 확진 기록 5일차 :: 벌써 주말 창문을 여니 다른 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주말이구나. 지난주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집 앞 편의점을 다닐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주만에 이렇게 상황이 바뀔 줄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얼마 전에 생일이었기에 감사하게도 끊임없이 오는 택배 박스를 뜯어보는 재미로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격리 해제 후 분리수거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 뻔한 줄 알았던 일상이 뻔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을 3년에 걸쳐 깨달아가고 있다. 내가 누리고 있던 자유는 온전히 내 몫이었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갈 때 즈음 배가 고파져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과 저녁 그 사이.. 2022. 4. 12.
코로나 확진 기록 4일차 :: 평일의 끝 격리로 보내는 평일이 끝났다.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지만 격리가 아니더라도 약속 없는 날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격리 생활은 나에게 그저 긴 주말처럼 느껴졌다. 의도치 않았지만 장 보러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냉장고의 음식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격리 시작했을 때 시켜뒀던 세 마리 치킨은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을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어쩌다 보니 쌓아두기만 했던 빵과 냉동식품, 그리고 엄마에게 받아왔던 반찬들이 꽤 줄어들어있었다. ​ 어쩌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별생각 없이 냉장고를 채워갔던 것처럼 당장 필요치 않았던, 혹시나란 말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욕심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헛헛한 마음에 꾸역꾸역 사다 둔 음식들을 정해진 기한 내에 해치워야 했던.. 2022. 4. 7.
코로나 확진 기록 3일차 :: 고민과 자유로움 벌써 격리 기간의 절반 정도를 지나고 있다. 남들처럼 이불을 싸맬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증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목은 칼칼했고 한두 마디 내뱉을 때마다 마른 기침이 얹혀 나와 꽤 불편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껏 여유를 누릴 수 있던 게 얼마 만일까. 겸사겸사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몇 개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스크립트 파일을 열어 대략적인 내용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블로그도 벌써 4년 차, 유튜브도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수월하게 써지는 느낌이 들어 문득 낯설어졌다. ​ 기분 좋은 낯섦이다. 가공되지 않은 형태의 글을 쓰면서도 하고 싶은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그저 기특할 뿐이다. 꾸준함 하나로 붙들어왔던 이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았.. 2022. 4. 6.
코로나 확진 기록 2일차 :: 오히려 좋아 어제 다른 영상 편집을 하다가 문득 그동안 미뤄왔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시작을 하면 꾸준히 만들어낼 자신은 있었지만 시작을 하는 게 쉽지 않아 고민하다가 미뤄 오기만 했다. 간단히 콘셉트를 정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일 년 넘게 매일 취향에 맞는 곡을 찾아 올려왔기에 콘셉트만 정한다면 그 콘셉트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곡은 많았다. ​ 그동안 내가 너무나 좋아했으나 유명하지 않은 아티스트 분들의 곡을 묶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매일 곡을 선정해 유튜브에 업로드하면서도 여전히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쉬웠던 아티스트 분들을 위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플레이리스트의 재생화면은 심플했지만 파일 자체가 용량이 크고 프리미어와 에펙을 함께 써서 .. 2022. 4. 4.
코로나 확진 기록 1일차 :: 확진자가 되었다 이게 얼마만의 늦잠일까. 결과가 오전 9시쯤에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나서 또 눈을 붙였다. 확진이면 확진 인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오늘은 늦잠이 허락된 평일이었다. 느지막이 눈을 뜨고선 시계를 봤더니 아직도 8시였다. 아무래도 몸이 출근을 기억하나 보다. 유튜브를 뒤적였다. 오늘 늦잠을 잘수있다는 생각에 늦은 밤까지 뒤적거렸던 영상들이 그대로 올라와있었다. 아쉬움에 핸드폰 화면을 끄고선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를 여니 며칠 전 엄마가 가져다 둔 국과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동안 텅 비어있다시피 하던 냉장고가 이렇게 채워져 있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가까워 보이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엄마 집은 뚜벅이에게 여전히 먼 길이었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 자주 가게 되려.. 2022. 3. 30.
코로나 확진 기록 0일차 :: PCR검사 어제 출근길, 엄마의 확진 소식을 접하고선 바로 버스에서 내렸다. 일단 팀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PCR 검사하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지만 그래도 걸을만했다. 한겨울이었다면 걱정을 했겠지만 날씨가 꽤나 많이 풀렸기 때문에 걸어가기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진을 피해가면 좋겠지만 현재 확진자수를 보면 그러기 쉽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부득이하게 함께 작업했던, 그리고 함께 직장에 다녔던 지인들이 확진이었을 때도 마음 한편에 나는 당연히 음성일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늘 있었고, 실제로 그 느낌이 맞았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확진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좀 강하게 들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는.. 2022. 3. 29.
함께했던 시간들 사유를 성가신 존재로 바라보던 이들 사이에서 홀로 품어본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더 외롭게 했다. 그러던 중에 시작했던 시나리오 수업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직은 가진 게 시간뿐이라, 살아가기 위해 그 시간조차 팔아야 했던 나의 삶에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로 막혀가던 숨통을 조금씩 트여가고 있었다. 그저 내 글이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단 생각에 벅차오르던 감정으로 시작했던 수업이 이렇게 위안이 되어 줄줄이야. ​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면서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모순적인 나를 한 번도 이상하게 보지 않으셨다. 얼마 전 우연히 들춰보고선 한없이 부끄러워졌던 수업 초반의 과제들을 받아보시고도 그 어떤 평가조차 하지 않으셨다. 오랜 시간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명확.. 2022.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