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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멈춰버린 도덕

by 이 장르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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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대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그리고 그 업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당신들이 일궈온 땅에서 우리 세대는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지금 세대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당신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지 않는다 해서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당신의 세대가 성실함이라는 방식으로 고통을 짊어졌다면, 우리의 세대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방식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내는 방식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고민하는 행위란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가시적으로 보였던 당신 세대의 방식과는 달리 당장 보이지 않을 방법을 택한 현 세대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 고민이 24시간 내내 지속된다 한들, 이 세대가 인생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한들 외부로 표출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약한 인간 집단이라 여겨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늘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매 순간 세상의 복잡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전보다 다양한 도덕적 가치가 나타나고 있으며, 가끔은 이러한 부분이 충돌되어 해결을 위한 방식, 혹은 해결이라기보다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의 합의를 위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꾸준하게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도덕적 측면에서의 절대 악과 절대선이 극명하게 나뉘던 시대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졌던 선택지는 단답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과거의 시대에 존재했던 절대악과 절대선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시대가 내밀던 절대선을 선택해 희생이란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도덕적 우월감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이 부분은 우리 사회가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인지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인과관계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희생과 가치관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선과 악이 분명히 나누기 어려워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절대선을 선택한 그 시점부터 품고 있던 당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며, 그것이 현재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절대 악으로 치부해버리게 된 근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 어쩌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았을까.

 

당신들의 도덕적 결단과 희생으로 우리가 현재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은 당연히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당신들이 무너뜨리려 했던 상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이들이었다는 것을 잊지않아줬으면한다. 열정적이었던 그 시기에 당신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상대를 마주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이 모순적이게도 당신들을 무능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신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던 도덕적 우월감이 더 나아가려는 이들의 세상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시대가 바뀌면서 도덕 또한 여러 갈래로 발전한다. 당신들이 빛났던 과거의 그 시간에 심취해 있을 동안 도덕은 더욱 견고하고 발전해 왔다는 말이다. 새로운 세대 또한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 시대의 도덕적 결함과 이와 맞서고 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놓을 생각이 없는 당신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도덕적 정체성을 원한다. 그 정체성은 분명 다시금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도덕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 현재를 함께 살아나가다 보면 더 나은 사회를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

-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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