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히 외화 영화에는 더욱이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이름만 들어본 크리스토퍼놀란 감독.
기억상실이라는, 어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을 잘 풀어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마치 ‘바느질’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플롯을 구성해냈다. 그렇게 외형적으로는 탄탄하고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플롯이 탄생했다.
기억은 색깔이나 모양을 왜곡할 수 있어.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니까.
기억은 각색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모르게, 내 손에 묻어있는 색으로 덮어버리곤 한다. 그것이 그때의 색일 수도, 지금의 색일 수도, 아니면 그때와 지금의 그 사이 어디쯤의 색일 수도 있고.
메모로 자신을 기억해내는 주인공. 그리고 그걸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들. 수십 번 반복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기억을 되새기려는 주인공의 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메모는 꽤 주관적이다. 아무리 사실을 적어낸다 한들, 그것을 적는 사람에 의해 또다시 재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역사 또한 그렇게 기록된다.
주인공의 메모 또한 객관적이지 않다. 때로는 새로운 기억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전에 적어뒀던 메모를 덮어버리곤 한다. 이것은 이전에 기록했던 메모가 주관적이었으며, 다시 적히는 메모 또한 주관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을 못 한다고 무의미한 건 아니니까.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사라지지 않듯이
기억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그 기억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회를, 내 기억의 주도권을 쥐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주인공처럼.
순차적이지만 되돌아가는 영화의 장면들. 마지막 장면, 즉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이전의 장면들을 조금씩 보여주는 장면 구성이, ‘왜냐하면 이래서 그랬던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마도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선한 사람은 없다. 악역 또한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에 의해 움직일 뿐.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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