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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덩케르트(Dunkirk)' 후기

by 이 장르 2020.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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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일까. 국가 수호를 위한 것일까. 지도자들은 그것을,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전체를 위해 ‘희생해도 되는 자’는 누구인가. 죽음으로 수호한 것은 죽음보다 가치가 있는가. 그러한 죽음은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가. 희생에 대한 보상이 희생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한 곳으로 귀결되곤 한다.

극한의 생존 위협을 느끼게 된다면 살아남고 싶다는, 그 절실함이 그 외의 모든 가치들을 무력화시켜버린다.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그들을 이러한 상황으로 밀어 넣은 자들이 분명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잃은 자들끼리 서로를 뜯어내기 바쁘다. 파이, 사실 그조차 너무 작기에 파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그것을 위한 싸움인 것이다.

“생존은 불공평한 거야. “

“아니,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고 본능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이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극단적 상황. 그것은 전쟁이 아닐까.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죽고 죽이는, 실제로 살생이 발생하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권력놀음에 타인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을 비겁함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잔인한 것이 아닐까.

 

“수고했네.”

“살아 돌아왔을 뿐인걸요.”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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