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세뇌시키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단지 그러한 행위를 '세뇌'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의미가 협소했기에, 이러한 행위가 주목받고 한 단어로 정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그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가스등'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가스라이팅'의 어원이 되는 영화이다. 꽤 오래전에 개봉했던 것으로 미뤄보아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나오지 않았던 어떠한 이야기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상징성과 일반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당연시 여겼던 사회 분위기 속에 우리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대상은 이전보다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타인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인간은, 우선적으로 타인의 모든 것을 혼자 하지 못하게끔 하여 독립성을 최소화하는 작업을 한다. 다시 말해 그 대상에게 행위의 제약을 가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최대한 컨트롤하고 그의 세계가 최소화되게끔 유도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상이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폴라는 그레고르의 의도처럼 스스로의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폴라의 세상은 집과 그의 남편이었던 그레고르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폴리의 생각은 멈췄다.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타인이 정의해 준 삶에 별다른 사유 없이 자신의 삶을 끼워 넣게 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조종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세상을 좁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레고르는 그걸 알았고, 이것을 폴라에게 시도했다.
현재도 꾸준히 가스라이팅은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히 사유를 시도하여야 하며, 스스로의 가치관을 단단하게 세워가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이 작업을 게을리하게 되는 순간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곳에서 나의 세상을 좁히려는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부디 타인으로 인해 스스로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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