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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후기

by 이 장르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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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세상의 기준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어왔다. 결국 나는 세상에 의해 철저히 고립되었다. 당신들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곳에 들어올 일은 없었을 텐데. 부모도 외면한 나를, 누가 지키려 하겠는가. 당신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했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하늘을 향해 힘없이 디뎠던 발은 결국 그대로 멈춰버렸다. 데이지에게 잔인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회피하려 했던 현실을 되새겨준 리사였나, 아니면 데이지를 지옥 속에 가둬두었던 그녀의 아버지였던가.

다시금 그녀의 흔적을 안고 제자리.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이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당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아래로. 아득한 무기력 속에도 바닥은 있더랬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방식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마침내 나 자신을 잃어버렸기에 가능한 것일까. 적대시했던 그곳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더랬다. 생각지 못한 위로는 내 세상을 바꾸기 충분했다.

리사를 동경했다. 리사의 자유로움을 사랑했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그 모습을 동경했다. 자욱했던 담배연기가 거둬질 무렵, 우리가 경험했던 자유가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 섞여버린 그 시간의 나와, 베일이 거둬진 날것의 세상은 이랬구나. 스스로에 갇혀 놓쳐버렸던 풍경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자유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에게 세상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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