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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피아니스트(The Pianist)' 후기

by 이 장르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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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폭발 소리가 무뎌질 때 즈음, 내 삶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평생을 걸쳐 들였던 나의 노력이, 이곳에선 그저 권력에 기생해 목숨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지는 오래. 나에게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의 손가락이 날카롭게 날아든다.

파란 별을 짓이기는 소리가 이곳저곳 울려 퍼진다. 왼팔에 둘러진 하얀 천은 점점 구겨지고 짓밟힌다. 도랑으로 밀려나버린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구를 원망하랴. 이 모두 인간의 욕심인 것을. 지나가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당신들에게 건네받은 것은 무기력뿐이다.

무얼 할 수 있을까. 그저 빵 부스러기 따위에 소중했던 것들이 하나씩 끌려가고 있다. 오랜 기간 쌓여버린 무기력은 덥수룩해져 버린 수염 속 피부처럼 잊힌지 오래다.

살아있긴 한 걸까. 살아있음에도 간간이 멎어버리는 숨결은 나를 점점 옥죄어온다. 희망 없는 삶에서 목숨만을 연명해야 한다는 것, 사실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곳에서의 목표는 단 하나, 생존을 위한 생존. 건반을 누르지 못하는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는 사치일 뿐이다.

나는 생존자, 하지만 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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