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주야장천 비만 내리더니 드디어 오늘, 구름 틈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에 기분이 좋아졌다. 끊임없이 비가 내려 우중충하던 그 시간들이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신기루같이 여겨졌던 순간이 조금씩 눈앞에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게 인생일까 싶으면서도 가끔은 야속하지 않나 싶다.
하루 만에 이렇게 마음이 바뀔 일인가 싶으면서도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닌가라는, 이미 인생을 다 산 사람이 내뱉을만한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했구나, 나.
그렇게 오늘도 한국인분들을 만나러 나갔다. 유난히 가벼워진 발걸음, 그리고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조금 더 상쾌해진 날씨가 나를 반겨주는듯했다. 적어도 당분간만큼은 이렇게 고민 없는 상태로 지낼 수 있었으면.
이제 내일이면 네가 이곳에 도착한다. 누군가에겐 벌써 3주가 흘렀나 싶은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3주였다. 너도 그랬을까.
네가 오기 전에 일을 구해두겠노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나였다. 혹시라도 내 조급함이 괜스레 너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네가 오기 며칠 전, 일을 구했다. 수능 끝난 후부터 일했던 시기가 일을 하지 않았던 시기보다 더 긴 나에겐 일이 없는 그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이 감정은 나의 숙제일 테지.
오늘도 전화의 끄트머리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선 나도 사랑한다는 대답을 기다리는 너였다. 표현이 많은 너이기에, 너의 목소리나 억양에서조차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던 너에게 참 고맙다. 하지만 아직은 표현에 서툴러 얼마나 사랑하냐는 너의 질문에, 그저 '많이'라고 대답했던 나는 여전히 낭만이 없나 봐.
나의 낭만 없던 대답에 '그게 다야?'라며 가벼운 투정을 부리던 너의 모습이 그저 귀엽게 느껴질 만큼 너를 좋아한다. 네가 이미 잠든 이 시간에 문득 네가 보고 싶어 새벽에 이 마음을 끄적이고 있을 만큼 너를 좋아한다. 잠깐이라도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했다던 너의 잠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한마디라도 더 건넬 만큼 너를 좋아한다.
이제 곧 보겠네. 조금 이따 공항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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