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다. 요 근래 케언즈는 맑은 날이었는데 어젯밤부터 밀렸던 비를 몰아서 내리는 듯 오늘 오전까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홀로 지내는 케언즈 생활이 익숙해질 때 즈음 새로운 사람도 알게 되고, 멜버른에서부터 친구였던 유토도 간간이 만나며 혼자인듯하면서도 적당한 위안을 얻으며 지내고 있다.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겠지.
매일같이 함께했던 너와도 연락으로만 함께하게 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너도 나도 2주 만에 각자의 곳에서 꽤 많은 변화를 경험해 가고 있네. 너는 내가 그곳을 떠나오기 전에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선 새로운 일을 구했고, 나는 이곳에서 백패커스를 거쳐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일을 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상황이 녹록지 않아 무기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럼에도 굳이 너에게 티 내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눌러 담다 보니 문득 너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더라. 이건 아무래도 내 상황에서 오는 감정의 문제였다.
확실히 너는, 나에게만큼은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다. 너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면 나를 좋아하는 너의 감정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니. 친구였을 때 너와 함께하기로 한 이후의 너의 다른 모습들을 하나둘 마주해 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됐던 너는 의외로 섬세했다.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면 그저 그 상황을 넘기기 급급하기보다 그 부분에 대해 공감을 먼저 해줄 줄 알았고, 내 작은 변화에도 너의 감정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마주했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치여 지쳐버린 나였다. 너에겐 티 내지 않으려 꾹꾹 눌러댔던 나의 감정이 어느샌가 나조차 짓눌러버리더라. 유난히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 버렸던 어제의 나를 걱정해 주던 그 마음이 따뜻해 오늘 또다시 힘을 내어 레쥬메를 들고선 소나기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너에게 고맙다. 내가 그리 표현이 많은 사람이 아님에도 너의 감정을 아까워하지 않아 줘서, 또 조급해하지 않아줘서.
생각의 흔적이 묻어나던 너의 문장을 좋아한다. 감정부터 앞세운 말이 아닌 너의 시간에 담가두다 꺼내어 말랑해진 그 부드러움을 좋아한다. 그럴 수 있지 하며 이해 없이 넘겨버리는 나와 달리 그럴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던 너의 온도를 좋아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리다. 그렇기에 각자의 당연함이 서로에겐 당연하지 않게 다가가지 않나 싶다. 그렇게 서로의 온도가 위로가, 또 힘이 되어주길.
'이방인으로서의 기록 > 202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비온 후 갬 (6) | 2023.02.19 |
---|---|
🇦🇺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을 때 (11) | 2023.02.17 |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1) | 2023.02.14 |
🇦🇺 오랜만에 연락한다는 건 (3) | 2023.02.13 |
🇦🇺홀로 지내는 케언즈 라이프 (5) | 2023.0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