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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 케언즈 라이프

by 이 장르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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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멜버른에 있었던 이야기만 풀어내는 것 같아 케언즈에서의 근황을 적어보려 한다.

호주에 와서 요 근래 유난히 잘 챙겨 먹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살이 더 빠졌던 멜버른 생활, 그리고 케언즈에 와서 한 달 정도는 멜버른에서 살 때보다 더 살이 빠졌더랬는데 그 이후부터는 점점 살이 오르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니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겠지.

내가 일하고 있는 스시집은 대부분이 한국인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멜버른에서는 로컬 펍에서 일을 했고, 손님들도 대부분이 호주인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한국인들과 함께 일을 해보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겠다 싶어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느낄 수 있는 정도 있을 테고,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서로 공감할 수 있겠지. 그리고 사실 멜버른에서 일할 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모국어로 대화하던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고.

이곳은 확실히 영어를 쓸 일이 오지 잡보단 없더라. 멜버른에서 일할 땐 시도 때도 없이 스몰 톡을 시작하려 하던 손님들과 달리 아시안들이 영어로 스몰 톡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여기는지 이곳에서 3주 가까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나에게 스몰 톡을 시도하는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테이블 체크를 하며 말을 걸면 그제야 이런저런 얘길 건네오는 이들을 보니 아마 이건 이들의 배려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유난히 신기했다. 대부분의 호스피탈리티는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낯을 많이 가려 어색하고 무뚝뚝하게 다가오고, 홀에서 일하는 분들은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게 대부분의 분위기인데 이곳은 정 반대였다. 홀에서 일하는 분들이 낯을 많이 가리시는듯했고, 오히려 주방분들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인사도 먼저 건네주시고 말도 많이 걸어주셨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내가 막내였단다. 막내가 되기 쉽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곳에서는 막내가 되어버렸다. 호주에서 정말 이쁨 받다 가겠구나 싶었다. 처음엔 무표정으로 무뚝뚝했던 홀 언니들도 이제 실수해도 웃으면서 얘길 해주더라. 나도 이곳에 점점 적응하고 있는 거겠지.

한인 잡이라는 거부감과 다르게 이곳에서 세컨비자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비자 만료 기간이 빠듯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해주시던 매니저님 성격이 시원시원해 보였다. 아무래도 고용까지 매니저가 전담하는 호주의 특성상 매니저의 성향이 그 매장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 부분도 크게 한몫했다.

어쩌면 나의 케언즈는 이들로 채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떠나는 호주에서 정붙이려 하면 떠나보내야 하는 그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몇 달 후 이곳을 떠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더라.

일한 지 이제 3주 차라 일할 때 여전히 놓치는 부분이 많다. 퇴근하며 매니저님께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인사드렸더니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며 다독여주신 매니저님께 감사한다. 그저 인사치레로 해주신 말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해주시고 그날 받아본 두 번째 주 시프트에 주 6일 근무, 그리고 오픈과 마감 모두 트레이닝이 잡혀있었다.

이제 다음 주부턴 주 6일을 풀타임처럼 일을 하게 될 거라며 괜찮냐는 매니저님의 질문에 당연하다 대답을 했다. 세컨비자 조건을 채우려면 한동안 풀타임 정도의 근무시간으로 일해야 겨우겨우 비자 만료 전에 세컨비자를 신청할 수 있을듯했다. 그렇게 시프트를 받아봤고, 대충 계산해 봐도 주 40시간은 거뜬히 넘는 시프트였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안도감과 이 시프트를 한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최근에 세컨비자 조건을 채운듯한 은님이 퇴근 전 조심스레 나에게 와서는 일을 할만하냐 물었다. 솔직히 일 자체는 힘들고 재밌는 것도 아니기에 좀 힘드네요란 대답을 했더랬다. 아무래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살인적인 시프트를 소화해낸 은님의 시프트가 이번 주부터는 나에게 그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걱정이 됐나 싶었다.

본인은 여기서 일하면서 발목 쪽에 문제가 생겼다며, 이곳에서 일하면 하루에 2만 보 이상은 걸어 다니게 될 거란 얘길 했다. 몇 시간만 일해도 2만 보는 거뜬히 찍어내는 이곳에서 나도 잘 버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면서 일 끝나고 집에 가선 꼭 발 마사지를 하고, 발목 보호대를 하고 다니는 것도 좋다는 말을 해주더라. 내가 잘 버텨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도 잘 버터 내는 게 아니라 견뎌내는 거겠지란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의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들 어떻게 세컨비자를 덥석덥석 따오는건지. 역시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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