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언즈에 온 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이제 시프트도 넘칠 만큼 나오겠다, 통장도 여유로워질 일만 남았으니 멜버른에서부터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준비해야겠지.
곧 있으면 호주는 겨울이다. 3월이 봄이었던 수많은 나날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6월의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추운 도시라던 멜버른조차 한국의 늦가을 날씨가 한겨울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케언즈의 겨울은 추위는 둘째치고 부디 이 더위가 조금이라도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이곳에서 가장 시원한 기온을 맞이할 때 즈음 우린 여길 떠나게 되겠지.
케언즈는 멜버른보다 아시안의 비율이 눈에 띄게 적다. 호스텔에서조차 아시안을 발견하기 쉽지 않고, 발견한다 해도 대부분 관광객이다. 이곳은 일본인이 유난히 많은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케언즈로 오는 직항이 있어서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보고 있다. 중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다면 말 다 했지.
케언즈의 밤은 마치 여행 온 기분을 느끼게끔 해준다. 동남아 날씨와 비슷한 케언즈 특성상 야자수가 즐비해있고, 산책길을 따라 곳곳에 은은한 조명을 심어두었다. 요 근래 바닷가를 걸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생각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여행 온 기분이 들어 기분이 몽글해지더라. 확실히 멜버른이랑은 다른 느낌이야.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케언즈를 워킹홀리데이의 첫 지역으로 선택하는 건 추천하진 않는다. 케언즈가 살아볼 만한 지역은 맞지만 집을 구하고, 특히 일을 구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멜버른이나 시드니, 브리즈번 같은 도시만 해도 일자리가 정말 많지만 케언즈는 그에 비해 작은 소도시 정도의 규모니까.
케언즈는 멜버른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하고 조금 위험하기 때문에 홀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다른 곳보다 길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첫 지역을 케언즈로 정한다면 케언즈에서가 아닌 호주에서의 생활이 힘든 거라 섣불리 판단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지역을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만나온 사람들과 기억들로 또 다른 경험에 도전할 수 있게 되더라.
케언즈에서의 삶도 이제 적응이 돼서 이곳의 시간을 즐기고 있지만 언제쯤 멜버른으로 돌아가게 될까라는 생각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멜버른에서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이들과 세컨드 비지 조건을 채우기 위해 멜버른을 벗어난 이들과의 연락이 아마도 멜버른의 시간을 그립게끔 하는 거겠지.
오늘 너와 함께 운동 가기 전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우리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 많이 애썼구나 싶었다. 너는 이제 세 곳의 일터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겠지. 풀타임과 맞먹을 정도의 근무시간을 약속해오던 그곳들의 연락에 그동안의 불안함을 이젠 내려놓을 수 있을듯하다는 너의 말이 마음에서 맴돌고 있다. 드디어 처음으로 불안하지 않은 채로 케언즈의 풍경을 즐겼다. 그렇게나 지겨웠던 비가 운치 있게 느껴지는 건 우리의 마음탓이겠지. 이제 정말 좋은 일만 남았나 봐 우리.
모든 길이 꽃길은 아닐 테지만 잘 버텨보자. 이곳에서의 기억들도 언젠가 추억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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