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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 호주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

by 이 장르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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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첫 생일을 맞이했다. 일을 뺄까 하다가 2주 단위로 페이 슬립을 받고 있기도 하고, 굳이 빼야 하나 싶기도 해서 스케줄 신청을 따로 하진 않았다. 호주에 오기 전에 직장인으로 지내왔던 터라 생일에 일하는 게 이젠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직장인은 아무래도 주말과 겹치거나 연차를 쓰지 않으면 하루 온종일 생일에 집중하긴 어려우니까. 그렇게 매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도 축하를 받고 있긴 하지만 생일이란 것에 점점 무뎌지는듯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오히려 나보다 네가 내 생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다행히도 생일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하는 시프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 생일이라고 아침을 먹여 보내겠다며 이래저래 분주하게 움직이던 너였다. 생각해 보면 매일같이 내가 출근하기 전에 아침을 해주던 너의 모습은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구나. 그렇게 일상이 고마워졌다. 생일 아침에도 부랴부랴 나가던 나와 점심에 내가 가고 싶다던 센트럴 카페에서 또 보자고 약속하고선 나는 또다시 센트럴로 향했다.

그렇게 난 출근을 했고, 이곳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바빴다. 오늘은 유난히 바빠 브레이크 다녀오던 시간조차 뒤로 밀려버렸더랬지. 센트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너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센트럴 오지 말고 바로 출근하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했다. 그렇게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점심시간을 받아들고선 내가 일하는 매장 옆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 하나 먹기 위해 서성였다. 그러다 이미 센트럴에 와있던 너와 연락이 닿아 함께 점심을 먹었지.

집에 와서 네가 퇴근할 때까지 쉬다가 퇴근하자마자 우린 나의 남은 생일을 함께하기 위해 비치 쪽에 있는 펍으로 갔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XPA를 마셔보려고 당차게 맥주를 주문했다. 감자튀김도 주문하려 했지만 이곳의 키친이 닫았다더라. 그렇게 너는 다른 곳에서 감자튀김을 사와 그곳에서 먹었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낭만 있었어.

아무리 생일날 일하는 것에 무뎌졌다 해도 일하는 내내 쉬고 싶은 마음이 다른 날보다 유독 짙은 하루였다. 그렇게 집에 와서도, 너를 만나러 가면서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봐뒀던 케이크가 다 팔렸다며 며칠 후엔 초를 불게 해주겠다던 너는, 내가 한 손에 들고 왔던 백에서 주섬주섬 꺼내던 6개의 컵케익을 꺼내놓았다. 그게 귀여워 보이는 것 보니 내 눈에도 콩깍지가 얹어져 있긴 한가 봐.

이렇게 매일같이 붙어있어도 할 아기가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펍에서도, 집 오는 길에도.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보라색 꽃다발이 놓여있더라. 알고 보니 하우스메이트였던 알렉스가 우리 오기 전에 너의 부탁을 받고 선 네가 사 온 꽃다발을 내가 널 만나러 간 사이에 방에 놓고 간 거였더라. 그렇게 나는 우리 집사람들의 방식대로 축하를 받았다.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겠다던 너 덕분에 정말 특별한 날이 되었던 내 생일이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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