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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 케언즈에서 세컨따는 일상

by 이 장르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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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르는 게 호주의 삶이라던가. 조금 편하게 움직여보기 위해 마켓 플레이스에서 자전거를 사러 갔다가 만났던 한국 분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주셔서 공짜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됐고,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다 알게 된 한국 분이 여러 반찬도 싸주셨다. 특히 곤드레 나물은 한국에서도 소중한 반찬인데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어 내가 일하는 곳에서 마감 때 싸올 수 있는 스시를 주섬주섬 사드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한 명에게 시프트를 몰아주는 형식이라 빠르게 세컨따기에는 좋지만 또 그만큼 한국인들 사이에선 악명 높다 하더라. 근데 그게 왜 그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CBD + 아시안 레스토랑' 조합의 고객들은 정말 최악인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 본인 나라에서 하듯 무례의 끝을 달리는 태도를 가진 나이 든 아시안들, 그리고 성희롱을 뻔뻔하게 해대는 소수의 할아버지들. 물론 '외곽 + 오지잡'의 조합 고객들이 무례하지 않거나, 성희롱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온 일행이 적어도 그 태도가 부끄러운 것임을 알기에 제지시키는데 여기는 일행조차 함께 동화되어 있다 보니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멜번에서의 기억을 되새겨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멜번에서도 'CBD +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이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특성의 문제인듯했다. 사실 이래서 한인잡을 피하려 했던 건데 얼마 안 남은 비자 기간이 나를 이곳에서 버티게끔 하고 있네. 물론 이곳에서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컨을 따고 나면 아마 바로 다른 일을 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이곳은 한창 성수기일 테고, 세컨을 따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워홀러들도 많을 테니.

 

최근 케언즈는 우기가 끝나고선 건기가 시작됐다. 분명 이곳에 도착할 때 즈음 이곳의 날씨는 습하고 더워 이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갈까, 그리고 휴양지로 왜 이곳을 선택하는 걸까에 대한 의문을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낼 수 없었는데 건기가 다가오니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가 되고 있다.

 

여전히 햇살은 따갑지만 상쾌해진 공기, 그리고 조금은 선선해진 날씨가 출퇴근길을 기분 좋게 해주고 있다. 낮에 밖에 나가는 것이 조금씩 걱정되지 않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이곳에 서서히 적응해 가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멜버른은 이제 가을이라던데, 그새 더위에 익숙해져 멜버른의 날씨가 춥게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헛된 생각도 해보고 있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났지만 아직 생일 같은 날을 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랜만에 외식 다운 외식을 해보기로 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구글맵을 켜고 어느 곳을 가야 할까, 우리의 직감이 맞길 바라며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골라 예약을 했다. 주 6일 근무에 주로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하기 때문에 날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 주에는 운 좋게도 시프트에 마감하지 않는 날이 하루 있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거창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거창한 계획을 세워봤더랬다.

 

일하는 동안 같이 일하는 연 언니가 오늘 끝나고 뭐하냐 길래, 끝나고 저녁 먹으러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다 했더니 거기도 맛있지만 본인이 자주 간다던 레스토랑을 알려주셨다. 이름을 말해주셨는데 그게 애매해서 잘 못 알아들은 게 티 났는지 언니가 친절하게 도켓뒷면에다가 레스토랑 이름을 적어주셨다. 이미 예약을 했기 때문에 다음에 가야지 했다가 헬스장에서 만난 한국 분도 거기가 정말 맛집이라길래 바로 예약을 바꿔보기로 했다.

 

케언즈에서만 7년을 살아온 연 언니에게 메뉴 추천도 받았겠다, 든든한 마음으로 운동 끝나고 집에서 짐놓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정말 얼마 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인지, 데이트 기분을 내보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아이라인도 그렸다. 몇 주 전 데이오프 때 내가 데이트하자고 해놓곤 내가 그 말을 까먹어 네가 전화로 오늘 영화 볼래? 했을 때 편한 복장에 울월스 장바구니를 들고 갔던 나였다. 이번엔 정말 데이트하는 기분 낼 거란 각오를 다잡고 화장을 하고 늘 메던 도라에몽 주머니 말고 가방 다운 가방도 들고나왔다.

 

추천받은 메뉴와 우리가 직감으로 고른 파스타는 성공적이었고, 함께 마시기 위해 고른 와인도 성공적이었다. 너와 함께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와인이다. 술을, 특히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와인에 대해 더 이상의 시도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내 세상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

 

밤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또 산책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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