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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가라앉는 날,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유난히 흐린 하늘로 머물어있던 날이다. 그러다 방심한 사이, 침대 머리맡으로 흘러내려오던 햇살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침대에서 내려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배갯면 움푹 패인 곳에 고여들 무렵, 짙은 구름 틈으로 보이던 하늘빛도 이내 자취를 감췄다. ​ 멜버른의 하늘은 늘 이런 식이다. 어느 날은 구름 한 점 보여주질 않다가 또 다른 날은 어디에 숨겨뒀는지도 모를 그 많은 구름들을 품고와 하늘을 가득 메워버리곤 하더라. ​ ​ 잊고 지냈던 모든 것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상하리만치 오랜 시간 느끼지 못했던 그리움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그리움과 눈물을 맞바꿀 때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 2024. 3. 3.
🇦🇺 남은 시간, 6개월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걱정과 아쉬움을 안아들고 떠났던 곳에서 그리워하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 마주했던 이곳의 청량함은 앞으로 경험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각자 또 다른 즐거움으로 두 번째를 채워나가고 있지 않나 싶다. 확실히 무료하지 않은 매일을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생각해 보면 한곳에서 꾸준히 다양한 것들을 마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케언즈를 제외하고서도 멜버른에서만 일 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곳은 너무나도 편하고 즐거운 곳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작년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증을 소화해 내기 위해 홀로 있는 시간마다 생각에 잠겨야만하는 나 자신을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 떠나온 호주였다.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이곳.. 2024. 1. 14.
🇦🇺 멜버른, 그리고 그 근황 이게 얼마 만에 써보는 글인가. 그동안 꽤나 정신없는 생활을 이어 나가다 보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다가도, 그저 글 쓰는 것에 있어 나 자신이 게을렀던 것뿐이었다는 걸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날것의 핑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것들로부터 다가오는 낯섦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운 이들로부터 다양한 삶을 듣는 재미도, 그들에게 또 하나의 다양한 삶이 되어주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더라. 익숙한 공간으로 들어온 새로운 이들, 그리고 익숙한 이들이 머무는 새로운 곳에 들어간다는 건 여전히 설레는 일이었다. 자주 오던 카페 손님과 친구가 되고, 더 이상 연락할 일 없을 것 같던 이와 생각보다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던 사람들과 .. 2023. 11. 17.
🇦🇺 멜버른을 떠나던 너에게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자리 잡아버린 또 하나의 일상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고민해 왔을 거란 걸 머리론 알지만, 이걸 받아들이기에 사람 마음이란 게 그만치 이성적인 존재였던가. 그렇게 서서히 다가오는 공허함을 슬픔으로 읽고 있는 나였다. ​ 맘껏 슬퍼지기로 했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왔던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외면한다 한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당분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할 순 없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순 있을 거야. ​ 응원한다. 행복하길 바라니 우리, 잘해낼 거라 믿는다. 각자의 선택에 이유가 있을 테니. 우리가 다시금 한국에서 만나는 날을 마주했을 때 서로에게 자랑스.. 2023. 8. 25.
🇦🇺 뜨거웠던 그 여름을 보내고, 비로소 가을 케언즈에서 멜버른으로 오던 그날,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의 붕 떠버린 시간을 채워준 이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지겹도록 떠나고 싶었던 그 기억조차 그리울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은 바램은 여전히 펼쳐두었던 미련에 조금씩 말라 물들어가고 있었다. ​ 막연히 즐거웠던 그 시절을 지나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을 그 시기를 잘 알면서도 그저 영원하길 바랐더랬다. 머리론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마주할 때 즈음엔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감정들이 여전히 두려웠나 보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서 다가오지 않을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을 지나치고 있구나. ​ 너무나 뜨거워 바깥으로 향하기 쉽지 않았던 여름을 지나 보내고 조금 식어버린 공기가 찬찬히 나를 감싸.. 2023. 8. 9.
🇦🇺워홀러로 살아간다는 것 이따금 워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언어도 완벽하지 않은 채로 연고지도 없는 지역에 취업이 가능하다던 비자 하나만 믿은 채로 내 덩치만 한 캐리어를 끌고선 이 먼 곳에 도착한 우리네 첫 감정은 대부분 두려움이었으리라.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던 일 년이었다. 워홀을 가기 전, 누군가는 워홀을 떠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아는 범위,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당신도, 나도 내가 호주로 떠난 이후 내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히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래를 단정 지어보려는 시도가 어쩌면 오만이 아닐까 싶었다. 주변의 부정적인.. 2023. 7. 31.
🇦🇺기나긴 인터뷰, 그리고 트라이얼 6월의 멜버른은 겨울이다. 남부에 위치한 멜버른이 가장 추운 기간이기에 이 시기만 되면 이곳 사람들은 북부지역이나 따뜻한 곳으로 긴 휴가를 떠나곤 하더라. 다시 말해 이 시기는 멜버른이 전체적으로 한가로운 시기라는 의미가 된다. ​ 최근에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오너가 같아 매장 파티 때마다 함께했던 벨라를 만났다. 벨라가 일하는 매장은 꽤나 바쁜 곳이었는데 요즘은 그곳조차 한가하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당연하게 내가 일했던 곳도 고요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내가 멜버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선 연락을 해왔지만 일을 구하기 전까진 그곳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돌아온 나였기에 곧 놀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레쥬메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매니저 세바스찬은 .. 2023. 6. 22.
🇦🇺다시 돌아온 멜버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케언즈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멜버른으로 돌아왔다. 처음과 달라진 점을 꼽자면 공항에 마중 나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도착해서 헤매지 않고 구글맵 없이도 목적지까지 바로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만나자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아, 생각해 보니 많은 게 달라졌네. ​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멜버른에 처음 도착한지 4일 만에 일을 구하고, 6일 만에 집을 구했더랬다. 가장 엄격하게 락다운을 시행했던 멜버른이었기에, 내가 들어왔을 때 즈음 이들은 그동안 비워뒀던 자리를 조금씩 채워가려 했기에 시작했기에 그 덕분에 일을 빠르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경험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온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버릴 줄이야. ​ 인간이란 여전히 어리석은 존재이기.. 2023. 6. 16.
🇦🇺 케언즈에서 나와 함께해준 당신들에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이곳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멜버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으로 근무하기 쉽지 않은 케언즈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을 만나 배려 받으며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네요. ​ 일을 하던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면 거짓말이지만 함께 일하던 분들 덕분에 쉽지 않은 순간들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 익숙해질만하면 떠나게 되는 것이 워홀러들의 숙명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기를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떠날 이에게 정을 주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이곳에서 지냈던 시간들을 기억 한켠에 얹어두고 가끔씩 꺼내보게 될듯합니다. ​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이곳에서의 삶.. 2023. 6. 8.
🇦🇺케언즈의 끄트머리에서 얼마 안 남은 출근길을 걸어가고 있다. 처음 왔을 때보다 시원해진 케언즈의 공기가 코끝을 스쳐가고 있다. 문 앞을 나서니 나를 맞이해주던 향은 청량한 하늘빛이었다. 이곳의 아침에 이런 느낌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 나의 시간이 케언즈의 끄트머리에 다다르고 있다.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이곳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걸 보니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거주지와 관광지 그 사이에 놓여있던 나의 케언즈는 지긋한 일상이 되기도, 또 익숙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건네받은 것들이 하나 둘 쌓여버렸구나. 너무나도 덥고 습해 햇빛을 피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던 처음과는 달리 선선해진 날씨에 여전히 따가운 햇살을 지금은 올려다볼 수 있게 됐으니. ​ 하늘의 채도가 낮아지던 .. 2023. 5. 29.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워홀 라이프 세컨을 따기 위해 케언즈로 온 지 벌써 100일이 넘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거의 다 채웠으며 5월 말까지 일을 하면 안정적으로 세컨을 딸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문득 멜버른에서도, 이곳에서도 운이 좋게 나름 워홀러 희망 편이라 자부했던 나의 생각이 하나의 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생각지도 못한 한정된 시간을 마주한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결정에 대한 결정을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결국 뜨는 해를 맞이할 때쯤에야 간신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른다던, 우리가 습관처럼 했던 말들이 또다시 나를 옥죄어올 줄이야. ​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급하게 어느 정도의 결정이 났고, 나는 이제 곧 멜버른으로 돌아간다. 막상 케언즈를 떠나려니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친해진 사.. 2023. 5. 24.
🇦🇺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멜버른에서부터 기획해 같이 일하던 T도 나름의 마음고생 끝에 섭외했고, 한국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해 이곳에서도 더디지만 꾸준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케언즈에서 다양한 재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걸 들어왔기에 세컨을따면서 일하지 않는 시간을 쪼개 프로젝트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은 역시나 이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일과 운동, 그리고 집을 오가는 반복적 삶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 일은 고되지만 다행히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잘 챙겨주신다. 단호해 보였던 주방 사람들도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처음엔 서로를 오해했던 J와는 이제 너무 친해져버렸다. 분명 같은 시기에 멜번에서 있었을 텐데 거기서 한 번도 J와 못 마주쳤다는 게 신기할.. 2023.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