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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밀양(Secret Sunshine)' 후기

by 이 장르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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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질투할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어쩌면 자비란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천적 재능일지도. 노력을 택하기보다 타인을 짓누르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결국 질투는 열등감으로 바뀌고, 그것은 곧 분노로 변한다. 열등감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 방향은 당연스레 타인을 향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누구도 잘못되었다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이러한 마음은 이기적인 걸까, 혹은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일까. 불행은 예고하지 않는다. 불행할만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그 대상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나에게 이럴 수 있나. 당신은 분명 나를 위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게 있던 모든 것을 앗아가고도 모자라 남은 나의 자비까지 앗아가려 하는가. 보고 있는가. 하늘에서 나를 보고 있는가. 거짓말이다. 당신은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아마도 배신감. 맞다, 배신감. 지독한 배신감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만든 것은 당신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비롭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 결국 스스로의 늪에 빠졌다. 어쩌면 용서하라는 말의 궁극적인 이유는, 인간은 누군가를 온전히 용서할 수 없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지킬 수 없는 문장이기에, 지키도록 했을지도.

용서라는 것은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일까, 혹은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일까.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은 어쩌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위하는 척하며, 나의 자비를 뽐내려는 것일 수도 있다. 보고 있나, 내가 이만큼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예상이 빗나갔다. 초췌할 것만 같았던 그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번졌고, 나의 용서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그의 입에서는 내가 가져온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인간이고, 자비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내 눈을 보며 이미 용서받았다고 했다. 용서의 주체는 나여야 하는데, 왜 당신이, 당신이 감히 용서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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