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부인 그들의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구와 함께여야 한다. 때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친구를 헐뜯기까지 하기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이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정해둘 수도 있고,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나이의 범위도 다양해져 마음이 맞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지만, 그 당시 그때는 같은 나이 때만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생각에,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친구의 조건에 맞춰 그 범위 안에서 친구를 사귀곤 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보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세상에 침범할 수 있다는 권한을 준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세상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으로 가득 채우면 좋겠지만, 삶은 불안정함의 연속이며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맞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 수고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익혀 스스로만의 신념을 굳히기 전엔, 이 사이의 괴리에서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권한을 남용하여 내 삶을 다루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세상은 점점 좁아지게 된다.
나의 세상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말이 된다. 분명 나는, 그저 너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러한 나의 마음이 너무나 큰 욕심이었던 것일까.
너와 나는 서로가 너무나 달랐기에, 함께하는 것이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네가 의도치 않게 준 생채기에 놀라, 나 또한 너에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 꽤 노력을 했더랬다. 그게 나를, 너로부터 지켜내는 건 줄로만 알았다. 소중한 너에게, 내가 아프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너도 아파보면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어렸다. 단지 나를 조금 더 알아달라고 했던 행동들이 모여 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 나에게 왜, 너에게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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