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모여 행복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애써 만들어둔 기억이 슬픔 이의 손이 닿자마자 슬픔으로 물들어버렸다. 모든 것을 망치기만 하는 슬픔은, 왜 우리와 함께여야만 하는가.
슬픔의 억제가 기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어떠한 일과 마주했을 때, 그에 대한 감정이 쌓이고. 그것을 모두 소모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기쁨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외면하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픔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 감정이다. 슬픔에 대한 부정을 마음 한편에 쌓아 두다 보면 정신적으로 무리가 오게 된다. 인간은 언제나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기쁨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감정에 서열을 매기거나 혹은 선을 하나 그어두고선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해버린다. 슬픔과 우울함은 그렇게 비정상으로 밀려나고, 그러한 사회에 주입된 우리는 슬픔과 우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악한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 ’ 정상적‘인 인간으로 비치기를 바라며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사회가 원하는 포장지로 싸맨다.
우리의 나이가 쌓여 어른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될수록 지나왔던 어린 시절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라일리의 기억 속에서 빙봉이 흐려지듯,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혹은 환경에 의해 조금씩 지워낸다. 상실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어쩌면 상실의 시간은 우리가 스스로를 다채로운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잃는 것, 가라앉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경계해야 할 경험이 아니다. 인간의 판단은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적이게도 서로 다른 감정이 공존해야만 감정을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슬픔이라는 감정은 기쁨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쁨으로 가득 찬 세상도 밝겠지만, 슬픔 속에서 숙성된 기쁨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 또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 모든 것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 들인 것이다. 무작정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 또한 세상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우리가 그러한 감정을 소화해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히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하키팀이 그날 위로하러 와준 건 ‘슬픔’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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