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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우리집' 후기

by 이 장르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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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없던, 우리 집이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닌 이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부모가 되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과정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 자체가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 일수 있는 순리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른이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나이가 쌓여간다면, 아이가 그 어른들을 대신해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어른스러운 아이는 표면적 어른인 보호자의 불찰로부터 나온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아이가 아이처럼 지내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은 이기적이다. 자신은 어릴 때 아이로서의 생활을 아이로 보냈으면서 아이다울 권리를 아직도 욕심내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까지 그러한 권리를 빼앗아 기한이 지난 권리를 억지로 연장시키려 한다. 이러한 어른의 이기심에서 파생된 행위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표면적 어른들로부터 둘러싸여 자라난 아이들은 결국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된다. 그들에게 어린 시절은 존재하지만 어릴 수 있었던 시간은 없었다. 결국 아이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며 아이가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 아이의 보호자는 자신의 행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지녀야 한다.

 

사회는 혹독하다. 어린 시절을 충분히 어리게 지내지 못한 그들에게 그 어느 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슬픔을 호소한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는 이는 없다. 그렇게 평생을 어른으로만 살아온 어느 순간 자신이 경험해 온 어린 시절에 대해 억울함을 느낀다면, 그 분노는 어디를 향하게 될까.

 

세상에 온전한 어른은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드러나는 숫자를 감당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두가 꾸준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이들이 맘 놓고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나의 어른들이 내가 아이로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어준 것처럼, 나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닐까.

 

세상은 인지하지 못하는 배려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하게 누려 왔던 것들이 사실 누군가의 배려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 즈음, 나 또한 받았던 배려를 흘려보내 줘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내가 흘려보낸 배려를 받아 들고는 당연스레 받아들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누려왔던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면, 내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다음에 있는 누군가에게 배려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한 세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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