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혹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도대체 세상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인간이 인간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을까.
나야말로 그런 기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아, 내게 냉정한 의지를 주시옵소서.
내게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인간이 인간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 건가요. 내게 분노의 마스크를 주시옵소서.
세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려니, 그 느낌이 너무나 막연해 여태 나는 어디에서 살아왔는지, 그 속에서 누구로 살아왔는지조차 막연해진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막연함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순식간에 번져 깊은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 느껴진다.
본질이라는 것이, 사실 누가 발견하느냐에 따라 상대적 일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시간은 사실 상대적이라는 것. 이 한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세상에 알려진 이론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맹신을 하는 것은 삼가고 있지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려면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신뢰한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녹아들어 가는 듯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사회 속의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을 최대한 분리해두려 한다.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을 사회로부터 굳이 공격받을 일을 만들지 말자는, 조심스러운 마음에서다.
하지만 그때 이래로 나는 이른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 라는
철학 같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일까.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지만, 몇십 년을 이 세상에 몸담으면서 내가 어떤 곳에서 살아온 것인지, 적어도 이 하나는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굳이 내 인생 하나 살아내는 것도 힘겨운데 다양한 인생이 섞여있는 세상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알면서도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참으로 모순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 떠오르는 순간, 왠지 모를 안심이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불완전한 생각을 늘어뜨리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가진 게 시간뿐이라, 사소한 인생을 연명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팔아먹는다. 젊음이란 이유만으로 나의 시간은 헐값에 사가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며 몰려온다. 이런 인간들의 이기심에 환멸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젊음을 팔아먹고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서글퍼온다.
나이를 쌓아가면서 무능해지는 몇몇 중년들을 보며, 나이라는 것이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싶어, 나 또한 저렇게 무능해지는 인간으로 남을까 두려웠기에, 자꾸만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려 하는 듯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모순적이게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내 모습이 파도처럼 지독하게 밀려온다.
세상. 어쩌면 나도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그 자리에서 만의 투쟁이며
게다가 그 자리에서만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앙갚음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때 그 자리의 단판 승부에 의지하는 것 밖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그럴싸한 대의명분을 부르짖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개인. 이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큰 바다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개인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라는 너른 바다의 환영에 겁을 먹는 데서 약간은 해방되어
예전처럼 한없이 온갖 고민을 하는 일 없이, 이른바 우선 당장 급한 필요에 따라
얼마간 뻔뻔스럽게 처신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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