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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되찾은 부끄러움

by 이 장르 202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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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차 각박해지고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였고, 나 또한 세상의 각박함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모르는 이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긴 적도 없지만, 그만큼 경험했던 친절이 흔치않았기에 나 또한 친절을 자주 베풀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여태 살아온 세상에선 모든 것엔 이유가 있었고,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르는 이의 호의를 마음 놓고 받아본 기억이 언제였는가. 기억의 꼼꼼하게 뒤져보아도 꽤 오래 전인지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듯했다. 아마도 이러한 기억이 현재 타인을 경계하는 나의 태도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동생과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약속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왔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동생은 집에 가기 위해 각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버스정류장 안내판에는 내가 타야 할 20분 간격의 버스가 잠시 후 도착이라고 빨갛게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탄한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에 꽤 들떴더랬다. 곧 버스가 도착하고, 빠르게 출발했다. 지갑을 찾아 교통카드를 찍었다. 잔액부족이 뜨는 것을 보고 현금을 찾기 위해 곳곳을 뒤적였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 왜인지 순탄하더라 생각하며 기사님께 내려달라고 조용히 말씀드렸다. 그 순간 내 앞에 계셨던 분이 다시 버스카드 찍는 곳으로 와서는 한 명 더 찍어달라고 하시고 버스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얼떨떨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조차 건네지도 못했다는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릴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이천팔백 원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십분이라는 시간을 건네받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제까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위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면, 그 대답은 대체로 부정적이었을것이다. 하지만 이 시국이라 불리는, 모두가 이기적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기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받았다. 지난날의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것일까.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어떻게 감사함을 전할까 고민하다, 이때 받은 마음을 고이 간직하다 후에 비슷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순간이 있을 때 또 다른 이에게로 흘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이 부정적이었던 나의 그늘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 내가 이전보다 성숙해져간다 생각하고있었지만, 아직은 멀었나 보다.

오늘의 나는 부끄러웠다. 이렇게 모인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살아야겠다. 오늘의 부끄러움도 훗날 다시 꺼내본다면 또다시 부끄러워질 테지만,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게 간직하며 살아가야겠다. 또다시 스스로에 무뎌질 때 즈음 꺼내볼 수 있는 부끄러움을 선물해 준 타인에게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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