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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또다시 실패했다

by 이 장르 202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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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실패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과 무력감은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나 보다. 이번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문득,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요 몇 주간 새로운 도전으로 꾸준히 쌓아왔던 나의 노력보다 감정이 앞섰나 보다. 분명 최근에 마주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며, 빛나던 친구의 세계가 타인으로 인해 좁아져가는듯해 마음 아팠는데,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세계를 줄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함께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일렁거려, 홀로 견뎌내야 할 부분까지 함께한다는 것에 묻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함께한다는 것에 분명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홀로일 때 나약해진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류의 나약함을 경계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수없이 가졌는데도,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것들이 이렇게나 쉽게 무너지다니. 사람은 참 나약한 존재였구나.

 

인생은 오롯이 혼자 꾸려 나가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 혹은 이러한 것을 포괄하고 있는 인간관계는 내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어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라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합께 해줄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과정이 기댈만한 물체를 쇼핑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듯했다.

 

혼자가 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둘이 되어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모순적이게도 각자의 삶이 존재해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곽정은의 유튜브 채널을 보곤 하는데, 한 영상에서 결혼을 히치하이킹에 비유를 했다. 로맨스 영화에서는 히치하이킹으로 인해 운명의 짝을 만나지만, 호러 영화에서는 주연 또는 조연이 살해당한다면서.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성별, 국적 등에 관계없이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결혼을 결정할 때, 우리가 하는 히치하이킹이 로맨스이길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늘 바람대로 되지 않으며, 호러와 유사한 장르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국 정신적 살해, 다시 말해 개인의 정신적 피폐로 이어지게 된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배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좋은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일 뿐. 좋은 배우자라는 것은 나와 잘 맞는 배우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좋은 배우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끔 사람들은, 사람의 성별이 두 가지인 것은 함께하는 형태가 완성된 형태라는 강박에 휩싸인 듯 연애와 결혼을 향해 달려간다. 세상의 복잡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에, 삶에 대한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현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이 지나쳐왔던 시간까지의 다양성만 인정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그저 자신이 보고 겪은 것만 믿으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사회는 마치 지구가 생겨났을 때부터 정해진 단계인 것처럼 사람의 나이별 성취해야 하는 인간의 과업을 정해둔다. 사회적으로 결혼 적령기라는 내 나이는, 어떤 기준으로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삶의 최종적 목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묘사해두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는 사랑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가끔은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낙인이 두려워 서둘러 결혼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나이가 점점 쌓여갈수록,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 혹은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어린 시절, 혹은 성인이 되어가는 중에 마주하게 되어 나와 인연이 된 이들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묘하게 이상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결혼의 이유였다.

 

이러한 공통점을 느낀 이후, 의도치 않게 주변인들에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물어보게 된다.

'나는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싶은데, 아이를 가지려면 이때쯤 결혼하는 게 아이 낳고 뭐하고 하면 적당할 것 같아서'

'남편(혹은 아내)의 일 때문에 결혼을 좀 일찍 하게 됐어'

'어차피 지금 같이 살고 있으니까 결혼할 거면 빨리하려고'

'어차피 결혼할 거 빨리 결혼해서 돈을 모으고 싶어서'

'아이가 생겼는데 책임지고 싶어서'

대부분 이러한 이유에서 결혼을 결정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남편(혹은 아내)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야'라는 이유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언급조차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결혼은 그만큼 현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감정만 앞세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결혼 후에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는 반드시 생각하고 결혼을 진행했으면 한다. 이러한 질문들이, 내가 결혼을 결심한 사람이 나에게 적정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것은 비단 한쪽만이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 아니다. 배우자가 될 사람과 반드시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하며, 그 배우자 또한 사회적인 낙인이 두려워 결혼을 결정하려고 하는지, 그렇다더라도 함께하기로 한 이상,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러한 고찰은 서로의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손님처럼 대해줬으면 한다. 외로움이 들어오면 들어오는구나 하면서 그 감정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복함이 들어오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행복함을 느껴 이러한 감정이 들어왔는지 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타인에게만큼 나 자신에게도 다정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내가 내 인생에 요구하는 것이 아닌,
내 인생이 나에게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 봐.

- 곽정은 '곽정은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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