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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데 즐길 수 있는 걸 피했었다

by 이 장르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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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갑작스레 차가워졌다. 얼굴을 덮어둔 마스크 틈으로 입김이 새 나올 정도니. 너의 올해는 어땠는지, 내가 궁금해해도 되는 걸까. 우리의 올해는 고드름처럼 아래로, 더 아래로 향해 그 끄트머리를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듯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려 입을 떼는 게 참 어렵네.

나의 이천이십년은 계획대로 된 것이 거의 없는듯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꽤나 어색하네. 물론 계획이란 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송두리째 뒤집힐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 그래도 우리, 그 와중에도 중심 잃지 않고 잘 버텨냈다. 기특해.

삶이 아무리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지만, 간혹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더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던데, 글쎄. 너무 잔인하지 않나. 물론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감정이 꽤나 상대적이라, 비교 대상이 있어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그래도. 그러기엔 지금 우리의 숨이 턱 끝자락까지 차올랐으니 말이야.

작년까지는 안에 있는 걸 바깥으로 퍼다나르는 기분이었지만, 올해는 그와 반대로 바닥이 드러날뻔한 안쪽을 다시 채워가는 과정을 보낸듯해 나름 의미가 있었어. 너는 어땠니. 너의 올해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니.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려고.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으려 해. 과거의 시간에 사로잡혀 지금을 낭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거든. 가끔씩 그런 생각도 들어. 붕 떠버린 것 같은 이 시간을, 그리워할 날이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아마 말도 안 된다며 이상한 사람이 보듯 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그러다 보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데 즐겨야 할 것도 피해버리게 되더라고. 아무래도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게 자칫 무너질까 봐 겁이 나나 봐. 무모해지기가 점점 어렵게만 느껴져. 우리가 앞으로도 무모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마도 우리, 이때의 우리를 그리워할지도 몰라. 아마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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