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 그리고 빗소리 사이의 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에 혹여 젖을세라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었더랬지. 맨발로 맞닿아본 지구는 이렇게나 거칠었구나.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던 빗물은 하나뿐인 입가로 모여들었다. 깜짝 놀라 벌어진 입속으로 빗물이 조금 들어왔는데, 그게 오늘따라 유난히 짜다. 누군가의 눈물이 머리 위로 내리고 있는 건지. 그런데 나는, 너의 눈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일까.
울컥했다, 아무 이유 없이 묵직한 응어리가 거슬러 올라왔다. 이토록 최선을 다해 슬픔을 흘려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적어도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아는구나, 당신이란 사람은. 그러다 소금기는 언제 사라진 건지, 밍밍한 물맛이 느껴졌다. 아, 이 짭짤한 감정은 내 것이었나. 잠시 동안은 누군가의 슬픔에 덩달아 내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었나.
그러던 중, 머리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떨어지던 빗방울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눈앞에는 여전히 비가 끊임없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데 말이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빗방울을 막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 우산. 머리 위 몇 센티를 남기고 빗방울은 하염없이 내 머리를 빗나갔다. 그제서야 뒤쪽에서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를 덮어주던 우산이 대신 비를 맞아줬다. 아니, 미세한 따뜻함이 내 뒤에서 나대신 비를 맞아주고 있었다. 이미 맨 다리에 올라탄 비가 다리 곳곳에 흔적을 남겨둔 상태지만, 뭐 그런대로 괜찮다. 이미 비를 맞았다는 것보다, 여전히 신경 써준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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