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나는 누군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아헤맨다. 이러한 우리의 갈망은 인간을 몇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게끔 만들었는데, 이러한 것 중 하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네 가지의 혈액형 분류이다.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사람을 분류하는 유형 또한 네 가지로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타인에 대한 정의의 갈망은 인간을 더 다양한 분류로 나누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혈액형에 대한 분류에 대하여 이런저런 반론이 제기가 되면서 등장한 것이 MBTI이다. 혈액형이 4가지의 분류인 것을 고려해보면 MBTI는 인간을 무려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그 종류가 너무 많지도 않으며 인간의 유형을 분류하고 타인과 자신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적절히 파고든 검사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MBTI는 4가지였던 혈액형 분류보다는 조금 더 과학적인듯해 보인다. ’모 아니면 도‘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 네 가지의 정도에 따라나온 결과들을 조합하여 분류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MBTI 또한 외향성이 49퍼센트인 사람과 51퍼센트의 사람이 다른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고, 외향성이 51퍼센트인 사람과 99퍼센트인 사람이 같은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MBTI 조차 인간을 분류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MBTI 검사를 하는 이유는, 적당한 분류체계와 검사자가 받아들이기에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검사 방법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님과 대화하는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분은 인간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다르다는 것을 기본값으로 인지하고, 서로의 다름을 발견했을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기 수월해진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는 같은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을 모두 아울러서도 동일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도 각자가 살아온 개인적 환경은 각기 다르며, 부모라는 두 가지 세계의 조합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부모에게서 나아져 자라난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있다 해도 모두가 같은 성격,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의 환경조차 첫째와 둘째를 낳고 키울 때 동일할 수 없기에 아이에게 동일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개의 세상 아래 이루어진 한 가정에서도 동일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다름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넘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물론 내가 살아왔던, 사유해왔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충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각자가 만들어낸 세상의 다양성에서 나온 것이며, 나의 세상을 누군가 받아들여주길 원한다면 우리 또한 타인의 세상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당연히 타인의 세상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내가 여태껏 사유해 쌓아왔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이 충돌된다고 해서 나의 세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시를 붙여두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세상은 다양성에 대해 점차 수용적인 태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세상에 개인이 포함되는 형태가 아니라, 세상과 개인이 서로를 통해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점차 다양한 색을 발견하고 내뿜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글노트 >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10) | 2021.02.15 |
---|---|
각자의 불행 (9) | 2021.02.04 |
밖에서 맞는 비 말고 안에서 바라보는 비였다 (0) | 2021.01.19 |
또다시 실패했다 (5) | 2021.01.18 |
되찾은 부끄러움 (4) | 2021.0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