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같지 않던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 같지 않던 어머니 밑에서 견뎌내야만 했던 마틸다의 인생에, 레옹은 한편의 안락한 담요였을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그 안락함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느낀 것일까.
아마도 레옹은 마틸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을 수도 있겠다. 가족 같지도 않은 가족이었지만, 허름하고 색이 바랬던 파라솔조차 없이 세상을 오롯이 맞이해야 하는 마틸다의 모습에 곧 닥쳐올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가늘게 몸부림치며 눌렀던 초인종 소리에 그 미세한 떨림이 전달됐으리라.
모순적이게도 가족의 모양을 따라 했던 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벗어나야 했던 소녀를 무참히 내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과 같은 외로움과 고독함이 느껴져서였을까. 미세한 떨림에 레옹의 연민도 요동쳤으리라.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이 열리는 순간, 마틸다의 떨림은 이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한낱 연민에 흔들리지 말라던 외부의 잡음에 잠시나마 흔들렸지만, 결국 레옹의 흐름과 마틸다의 떨림은 하나로 겹쳐져 또 다른 삶의 진동을 만들어냈다. 몇 줌의 흙에 겨우 뿌리내렸던 화분뿐이 없던 그의 삶에서, 조금 더 뿌리내릴 수 있는 흙이 있지 않을까, 희망 따위가 불쑥 들이밀고 올라왔더랬다.
사랑의 형태는 어떠하든, 그에 따른 희생의 형태는 유사했다. 죽음에 무뎌져야만 했던 레옹에게 죽음에 민감해지는 순간이 왔다. 언젠간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몸뚱어리를 온전히 세상에 내던졌지만 살인을 위해 우연히 맞이한 죽음과는 너무나 달랐다. 죽음의 순간을 앞당겼다. 죽지 않을 것만 같던 그가, 자신의 오른쪽에서 따라와 줬던 마틸다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어쩌면 레옹은 마틸다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틸다가 누른 몇 번의 초인종은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죽을뻔한 마틸다는 살아남았고, 좀 더 살아남을 수 있던 레옹은 가족이 되어줬던 마틸다에게, 자신의 숨을 덧대어 주었다.
2-1-2. 홀로 남겨진 세상에서, 마틸다가 당신을 유일하게 지켜줄 수 있었던 노력. 살아있지만 어딘가에 맘 편히 뿌리내릴 수 없는 레옹은 스스로의 삶을 겨우 감내하고 있던 자신의 처지에 무뎌져있었다. 레옹이 매일 우유 두 개를 샀던 것은, 미처 성장하지 못한 어른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이 아닐까. 분명 신체는 시간을 따라 부지런히 주름잡혀가지만, 내면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기에 습관적으로 우유를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시작과 끝, 그곳에서 기댈 곳 하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을 열어준 사람. 자신의 것도 지키지 못했던 사람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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