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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관하여

읽기 좋은 책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후기

by 이 장르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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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그래도, 하고 나는 물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이익을 보는 건 사실이잖아요. 보겠지, 도대체 그래서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퉁명스레 담배를 물던 요한의 얼굴이 생각한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어쩌면 인간은, 감가 상각되어가는 한낱 깡통 따위일지도 모른다. 물론 깡통 따위에게 감가상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깡통끼리 모아두다 보면 그것도 그런대로 유의미한 차별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깡통에 어떤 색을 칠해놓을까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채워나갈까 꾸준히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 모든 깡통들의 고통스러운 운명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채워 넣지 않은 깡통은 그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성가신 깡통 따위일 뿐이다. 아무리 찬란한 색으로 칠하고 덧대보아도 빈 깡통일 뿐이라는 말이다.

반면 깡통에 무언가를 채워 넣다 보면 외부의 충격에도, 다른 깡통에 비해 그런대로 작은 소리를 낸다. 그에 따른 이동 또한 적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비교적 적게 동요되는 깡통이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깡통이 같은 크기 일수는 없지만, 그 크기에 상관없이 결국 깡통은 자신을 채울 수 있는 만큼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다고 깡통의 크기가 무작정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닌듯해 보인다. 비교적 큰 깡통들은 다른 깡통에 비해 채움을 위해 보내야 하는 시간이 더 길기에, 결국 어느 것이 좋다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 깡통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번 주워 담은 것은 빼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또한 담아냈던 것을 꺼냈다고 해서 배어있던 냄새를 쉽사리 없앨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기에 길가에 널브러진 쓰레기까지 담아버린다면 결국 남는 건 악취뿐이니, 주워 담더라도 신중할 필요는 있겠다.

결국 인간이란, 현재 지니고 있는 것만큼의 양을 감당하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만한 그릇을 받아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지만,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 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결국 경험한 만큼이었다. 내가 하루하루 이어가던 생각은, 단지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뿐이었나 보다. 싱거웠다. 어쩌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의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은 물리적인 시간을 절대적으로 앞세워 인간의 한계를 단정 지으려 한다. 그런 세상에 끊임없이 반항하듯, 인간은 경험을 확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니, 사실 살다 보니 경험이 쌓여간 것일 수도 있겠다. 굳이 노력하지 않았지만, 임시방편으로 막아둔 시간 덕에 쌓여간 경험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경험이란 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있나 싶기도 하고. 세상은 다양성을 강조하며 수많은 선택지들이 널려있다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선택을 위한 선택을 할 때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선에 대하여 속삭이고 있다.

결국 인간의 경험은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눈속임에 수없이 걸려 넘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세상은 좁아지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그래서 결국엔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지. 교만해지는 거야. 그것이 스스로의 빛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는 거지. 대부분의 빛이 그런 식으로 변질되는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어쨋거나 그들도 결국은 개인일 뿐이야. 자신의 삶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미인도 불 꺼진 전구와 같은 거지. 불을 밝힌 평범한 여자보다도 추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거야.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 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 난 전광판과 같은 거야. 너랑은 다른 거지.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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