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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AI시대, 본능의 미래' 1. 섹스의 미래

by 이 장르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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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관한 아주 강력한 클리셰 두 가지는 첫째, 기술이 윤리적인 경계에 구속당하지 않고 발전하는 곳. 둘께, 섹스에 관해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태도를 보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은 섹스에 집착이 심하면서도 동시에 무심하다고 한다. 앞뒤도 맞지 않고 불공정한 고정관념이다. 이 지역에서 만드는 기묘한 섹스 장난감을 상당 부분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특히 더 그렇다.

- 제니 클리먼 'AI시대, 본능의 미래'

동아시아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개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길 요구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우리의 문화는 인간의 성(性)에 대한 모든 언행과 행동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숨기기에 바빴다. 어떤 분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를 드러내놓고 함께 의견을 나누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겪지 못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기형적인 성관념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세상에 등 떠밀려 음지로 밀려들어간 성(性)은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러한 환경이 성(性)이라는 것을 자극적 요소로 변질시켜 버리는 것이다. 분명 성(性)이라는 것 자체에는 문제적 요소가 없으매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것을 오락적 쾌감을 위해 점차 자극적으로 무언가를 덧붙인다.

 

어쩌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폐쇄적 성교육이 동아시아의 아이들을 기괴한 성적 욕망을 지니게끔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들의 부모에게조차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해 꽤 많은 아이들이 포르노만으로 성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정상적인 성관념을 가지고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것은 일차적으로 방관했던 사회의 책임이다. 사회는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인권은 특정인만의 인권인듯한 불쾌감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온라인 게시판에 모인 인셀들은 여성이 성적인 힘을 이용해 남성을 학대한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끔찍한 불공정에 맞서 섹스할 권리를 위해 싸우는 소외된 단체라고 묘사한다. 흑인이 경찰에게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이들은 쓴 '정액받이'에 불과한 여성이 '숭배를 받고' 있다며 탄식하는 게시물, 여성을 죽여야 하며 쫓아가서 '눈알에 고추를 박아넣어야 한다'는 게시물을 읽었다. 이런 글을 단순히 절망적인 머저리 몇 명이 온라인에 늘어놓은 폭언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글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다. 2017년 11월 레딧(미국의 소셜 뉴스 게시판 서비스)이 강간과 폭력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인셀 커뮤니티를 닫았을 때, 인셀 서브레딧의 회원 수는 4만이었다. 회원만. 게시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로그인하지 않고 슬그머니 돌아다니며 게시글을 읽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서브레딧은 온라인에 있는 비슷한 커뮤니티 수십 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른바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여성과 섹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거부당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싫어한다. 이들은 여성이 좀 더 쉬워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쉬운 여성을 혐오한다. 섹스를 거부당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경멸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게 부자나 미남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여성 혐오자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 제니 클리먼 'AI시대, 본능의 미래'

인셀이라고 칭해지는 집단은 단지 작가의 문화권에서만 작용하는 특수한 형태의 반사회적 집단이 아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저 그러한 류의 인간들을 칭하는 명칭만 다를 뿐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 역할로 묘사해왔던 사회로부터 시작된다.

 

사회로부터 남성의 성적 욕망은 본능이며, 제어하기 어려운 존재로 오랜 기간 묘사되어왔다. 남성이 성적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사회는 그 방법이 잔인하거나 기괴하더라도 그저 묵인하였고 이러한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굳이' 참지 않아도 용인되는 요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듯했다.

 

사회는 그저 성적인 요소들을 인간의 본능이라고 언급하며 얼버무렸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사회와 같이 성문제에 대하여 얼버무리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사회는 꾸준히 흐르고 있다. 결코 한곳에 머물러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흐름이라는 것은 기존에 묵인했던 요소들을 파헤쳐내어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새로운 정의를 내려버리기도 한다. 대부분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는 이들은 기존의 암묵적 사회 흐름이 현재의 사회 흐름에 비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과거의 것을 유지하여 자신이 누려왔던 ‘당연스러운 권리’를 잃지 않고 싶어 하는 몸부림을 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고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물론 개개인의 의무는 아니겠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타인에게 세상적으로 철 지난 과거의 가치관에 얽매여 주변에 피해를 주진 않기를 바라본다.

 

섹스로봇은 무엇보다 통제를 원하는 남성들에게 훨씬 강력한 통제권을 제공한다. 자율성이 없는 파트너, 개인 욕구와 자유의지의 침해라는 불편함 없이 완벽하게 지배할 파트너를 가질 기회다. 포르노 배우처럼 생겼지만, 결코 헛구역질하거나 구토하거나 울지 않는다. 이런 남성에게 섹스로봇은 실제 여성을 업그레이드한 것과 같다. 절대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섹스로봇은 이런 욕망을 없애는 게 아니라 부추긴다.

- 제니 클리먼 'AI시대, 본능의 미래'

 

대부분의 남성들은 섹스 로봇으로 인해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 성욕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섹스 로봇이 가지고 올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인간 여자와 섹스 로봇을 분리하여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값이 이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섹스 로봇이 인간 여자의 형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섹스 로봇이라는 것은 분명 인간 여성의 형태와 동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섹스 로봇은 이미 인간 여성의 형상을 띠고 있고, 그들이 섹스 로봇으로 인해 해소하려는 것이 성욕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것으로 인해 은연중에 드러났다. 분명 섹스 로봇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성욕을 해결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굳이 여자의 형상을 띤 로봇을 만들어 그것이 소리를 내게 하고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억압적인 말들을 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은연중 이미 인간 여성을 이런 형식으로 인지하고, 앞으로 인간 여성에게 바라는 바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이러한 인지를 확장시키는 섹스 로봇 생산 행위는 이들의 기괴한 인식을 정당화시키는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인간 여자와 섹스 로봇을 동일선상에 놓고 사고하는 이들은 이미 섹스 로봇의 등장으로 그들의 기괴한 사고에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기에 앞으로 인간 여자를 섹스 로봇처럼 다루는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성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그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퇴보하게 될 성 의식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성범죄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떤 남자들은 여성을 이렇게 욕망과 선택권을 가진 지각력있는 존재로 다시 생각하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느꼈다.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화가 아주 많이 났다.

- 제니 클리먼 'AI시대, 본능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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