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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내 이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by 이 장르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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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설 연휴가 지나갔다. 이렇다 할 장소를 다녀오지도, 누군가를 만나서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저 주말이 두 배로 길어져 여전히 집, 그중에도 방 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갔더랬다. 사실 내가 방 안에서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사박사박 만들어내는 것을, 나의 가족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독립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물론 이들의 감정은 내가 생산적인 나날들을 보내는 것에 대해 제지하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다. 주변인들은, 혹은 그들의 딸은 밖에 나가 누군가를 만나며 사진으로 남기고, 이렇다 할 장소를 다녀온 경험으로 가족과 대화를 한다는 사실이, 방안에서만 있는 나의 모습과 대조되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내가 가시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를, 혹은 그들이 말하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한 말을 뱉어냈는지도 모른다.

평범함이라. 처음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기준의 나는 분명 평범했다.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이라 때로는 평범함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는데. 아, 평범해 보이지 않았으니 그런대로 성공한 건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나는 서로가 만나기 꺼려지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채움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들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아마 가시적인 것들을 동경하게끔 설계된 세상이, 그 세상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몸담고 있었던 우리가 물들어버린 것뿐이겠지. 혹은 당장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가시적이지 않은 채움을 실행해가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기에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세상의 평범함에서 배제하려는지도 모른다.

내 이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취향처럼 각자 추구하는 채움의 방법도 다른 것일 뿐이다. 이러한 시기가 시작되기 전, 한 달에 한 번씩 출국하던 그 시기에, 나는 참 공허했었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끼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던데, 나의 마지막 여행 지었던 대만을 생각할 때면 우울했던 기억이 샘솟아 오른 다. 부정적인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한 번도 헤매지 않았던, 너무나 평화로웠던 여행이었기에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는 분명 고갈의 신호였다. 하지만 유일한 사회활동이었던 여행을 놓지 못했던 나는 그러한 신호를 무시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여행자라는 타이틀을 놓기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불행 중 다행인지, 스스로를 채워 갈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분명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일 뿐.

이전보다 당당하게 채우는 활동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마이너 한 음악 취향을 지닌 나에게 호감을 살만한 곡을 찾아다녔다.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혼자만의 취향을 하나둘씩 플랫폼을 통해 띄워보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의 글과 내가 호감을 품은 곡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온전히 내가 되기 위한 하나의 몸짓일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하나둘 내 취향에 들렀다 가기 시작했고, 생각지 못한 소소한 관심에 때로는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행복이라. 글쎄, 아마 이런 게 행복 아닐까. 내 취향을 있는 그대로 내놓고, 또 그걸 봐주러 먼 길을 오는 사람들. 취향에 공감받을 수 있다는 건,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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