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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1-2. 프랑스 파리 France Paris🇫🇷

by 이 장르 202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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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어디에서도 한국어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도착했다. 영화에서 볼법한 건물들이 당연스레 줄지어 늘어져있었다. 진짜 파리에 왔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파리다 파리. 비행기에서 열두 시 간 남짓한 시간을 긴장하며 보냈지만 도착 한순간부터 얼마 남지 않은 파리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만끽해 보기로 했다. 멀리 가진 못하겠지만 숙소 근처라도 돌아다녀봐야겠다.

 

파리에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은 에펠탑 야경을 보기 위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지도 않고 한시라도 파리를 더 만끽하기 위해 나갔다고 한다. 에펠탑이라. 피곤하다는 생각이 점차 사라지면서 나도 에펠탑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읽혀버린 건지, 아니면 다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느껴졌는지 다들 한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도 에펠탑 보러 갈까요?"

"너무 좋아요. 파리에 왔으니 1일 1 에펠탑 해야죠."

 

사진으로만 보던 에펠탑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에펠탑을 지구 반대편쯤의 이야기로 여겼던 나는, 사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이미 어두워져 누군가에게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지만, 우리에겐 이제 갓 파리를 경험하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시차라는 게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을 다르게 받아 들 일수 있겠구나.

 

우리를 태우고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던 차는 곧 숙소 앞에 도착했다. 노란 불빛이 간간이 비추고 있는, 과하지 않은 거리였다. 한국의 새벽 거리 같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차들이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보면 새벽이 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숙소 입구는 노란색뿐만 아니라 초록, 보라색 불빛도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작은 종이 몇 개 달려있었는지, 소리를 내며 울리던 숙소 입구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봉쥬ㄹ-' 하며 인포 직원이 문이 열리자, 우리를 맞이했다. '하-이'라고 인사를 건네자 씨익 웃으며 우리에게 '봉쥬ㄹ-'라고 인사를 해달라고 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우리가 그의 발음을 따라 '봉쥬ㄹ-'라며 인사를 다시 한번 건넸더니,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멜ㄹ-씨'라고 했다.

 

조그마한 숙소 인포에서 옆으로 돌아가니 조금은 좁다고 느껴지는 로비가 나왔다. 한국인들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먼저 도착했다던 이번 여행 동행들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고, 우리가 마지막 비행기라 아마도 숙소 배정을 위해 우리를 기다린듯했다. 앞으로의 유럽여행 동안 숙소를 함께 사용할 사람들은 이미 한국에서 정해졌다. 나이 때가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신기하게도 나와 함께 숙소를 사용할 3명은 나와 같은 나이었다. 신기했다. 나만 신기해한 것이 아니라, 이 3명도 함께 신기해했다. 

 

우리는 모두 이십 대 후반, 게다가 동갑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긴 여행을 오기 위해 시간을 내기 쉬운 나이는 아니다. 이미 직장인일 나이, 혹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나이이기 때문에 시간을 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네 명이나 같은 나이라니. 물론 각 나이마다 품고 사는 문제가 있기에 여유 있는 나이가 어딨겠느냐만, 우리에겐 지금 이 나이가 가장 어려운 나이임이 분명했다.

 

그중 한 명은 저번 강남역 모임 때 봤던 시크한 여자애였다. 그때는 코트부터 구두까지 까맣게 하고 와서 성격 또한 시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냥했고 특히 눈웃음이 참 매력적이었다. 침대는 더블로 두 개. 오늘 처음 본 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파리라는 주제가 있었고, 도착해서 이미 에펠탑을 보고 왔다던 초와 진, 그리고 수는 나에게 에펠탑 풍경이 얼마나 이뻤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설명을 다 듣기 도전에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가기로 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고 숙소를 나왔다. 아쉬웠지만, 아쉬운 만큼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설렘이 찾아왔다.

 

주섬주섬. 지갑, 여권, 핸드폰, 카메라 등의 간단한 짐을 챙겨 아까 그 로비로 나왔다. 거기에는 아까 공항에서 보지 못했던, 사실 강남역 모임에서 봤던 선생님 같았던 정 씨가 우리를 위해 한 번 더 에펠탑을 가기로 했다. 정 씨는 2시에 파리에 도착해 나와 방을 함께 쓰던 사람들과 이미 에펠탑을 한번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중에 에펠탑 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우리의 부탁을 받고 또다시 나와준 것이다.

 

현장학습 온 유치원생들처럼 원 씨를 따라 우르르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분명 벤을 타고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 올 때는 날이 맑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금세 머리 위로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가 성가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가 파리에 온 것을 환영이라도 해주는 건가 싶었다. 여행이란 게 사람을 꽤나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는 비 올 때 제일 예쁘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파리는 비가 와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그렇게나 찾았던 감성이란 게 이곳, 파리에서는 수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파리의 분위기에 감탄하면서도 두 발은 사람들을 따라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숙소에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 지하철 역이 나왔다. 한국의 지하철역은 여기가 지하철역이라는 것을 광고하듯 역 안내판이 서있는데, 파리의 지하철역은 정신 차리고 찾지 않으면 금세 지나 칠 것만 같았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지하철역 내부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사용했던 마그네틱 지하철표를 파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유로화를 넣고 지하철표를 뽑았다. 대기하는 곳과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곳 사이에 안전문 조차 없는 지하철역은 바깥보다 채도가 낮은듯한 느낌이었다. 지하철역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에펠탑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도착했다. 한국의 지하철보다 노란 불빛은 지하철이라는 느낌보다는 시공간을 여행하는 느낌을 주었다.

 

얼마쯤 갔을까. 노란 불빛 아래에서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렀을 뿐인데, 정 씨가 우리에게 여기서 내려야 한다며 조용한 목소리를 건넸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그네틱 티켓과 이별을 하고 지하철 역을 나왔다. 일행들은 정 씨를 따라 신호등을 두어 개쯤 건넜다.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다 잠시 멈춘 정 씨는 이내 우리의 뒤편을 가리키며, 여기서 봐야 에펠탑이 제일 잘 보일 거라 말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 씨의 말대로 맞은편으로 에펠탑의 야경이 한 장의 사진처럼 담겨있었다.

찰칵찰칵. 멈추지 않는 셔터 소리에 춤이라도 추듯 에펠탑의 불빛이 반짝였다. 문득 이 여행이 오랜 시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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