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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1-1. 프랑스 파리 France Paris🇫🇷

by 이 장르 2021.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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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두근거리기보단, 오랜시간동안 한껏 구겨져있던 몸을 드디어 맘껏 펼쳐 놓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행여 서있는 방법을 잊었을까, 연습 삼아 양팔을 쭉 펼쳐 찌뿌둥한 몸을 한껏 늘려보았다. 기지개를 켜는 동안 시선을 돌려 마주한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의 시차 정도만 경험해본 나로선,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는 느낌이었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놓여있을 때 즈음 출발해 꽤 오랜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만 있었으니, 낮과 밤 정도로만 구분할 수 있는 이곳에서 시차라는 것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만 있을법한 단어였다.

 

 

서울에서부터 파리까지, 8시간정도를 거슬러왔다. 2019년 나의 3월 6일은, 내가 여태 살아왔던 날 중 가장 길었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파리에 도착하면 한국에서보다 8시간이 젊어진다는 생각에 그런대로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밤은 꽤나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또 그렇지만은 않았다. 새삼 파리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곧 착륙한다는 방송이 기내안에서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비행기를 벗어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마주칠 일이 없던 일행들과는 아직도 어색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파리라는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약속이나 한 듯 빠르게 눈을 돌려가며 서로를 찾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모두가 한마음이었구나 싶었다. 가져왔던 담요와 목베개를 양팔에 끼고 비행기 입구에서 만나 입국심사를 위해 나가고 있었다. 

 

살짝 멍한 정신으로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와중에도 나름의 기록을 남겨보겠다고 앞만 보고 가는 언니들을 뒤따라가면서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후에 블로그에 포스팅할 때 보니 흔들리고, 가끔은 어딜 찍은지도 모르겠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마 그 사진 속에는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공존했던 그때를 고스란히 담아내지 않았나 싶었다.

 

무작정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다 환승하는쪽으로 갈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길을 나름대로 잘 찾아줘서 미로 같았던 게이트를 벗어났다. 짐도 무사히 찾았으니 강남에서 함께했던, 그리고 앞으로의 유럽여행 동안 함께할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연락을 했다.

 

 

지이잉. 지잉.

'대한항공 팀 도착했습니다. 저희 짐 찾고 있어요.'

'출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까만 코트를 입은 한국인이 핸드폰 화면으로 손바닥이 가려진 채 우리를 반기고있었다. 자신을 인솔자라고 소개하던 그 사람은,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출구 앞에서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파리에서의 만남이 처음이라 어색한 시간은 가늘고도 길게 이어졌다. 과연 유럽여행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 기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함께하는 일정이 끝나는 날이 빨리 돌아오길 바랐다. 부디 프라하에서 혼자 보낼 시간이 빠르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한국을 그리워하던 대장이, 우리를 단지 해치워야할 하나의 일정으로만 여기지 않아 줘서 마음속에 간직할만한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부분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고마운걸. 부디 그 시간 안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행복했길 바라.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렸다는 연락이 왔다. 아마도 같은 차를 타고가게될듯한데, 또다시 어색한 시간이 돌아오겠군. 약속을 잘 잡지 않는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한 번에 마주하게 된다는 게 꽤나 많은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맞이하려니 벌써부터 하루치 체력을 다 쓴 기분이 들었다. 다행인건지, 파리는 밤이네.

어떻게 인사를 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않는다. 아마도 시답잖은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어보려 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 부랴부랴 짐을 들고 공항 주차장으로 가니, 까만 차 앞에 서있던 기사님이 '하-이'라며 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건넸다. 아, 영어. 외국이구나. 프랑스 파리가 아닌, 그냥 외국.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이라는 단어로 묶어 말했는데, 아마도 외국이라는 단어와 가보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를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묵직한 24인치 캐리어 8개가 테트리스처럼 뒷트렁크에 채워지고, 우리들도 캐리어처럼 차례대로 자리를 잡고 출발했다. 어차피 저녁이었기 때문에 내일의 간단한 일정을 안내받고 양쪽 창문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밤 10시쯤이었나, 어두워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법한 도로의 풍경이 , 공항에서부터 파리 시내로 가는 동안 펼쳐졌다. 밝을 때 보면 좀 더 내가 생각했던 파리와 비슷한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를 오면 모든 게 한국과는 다른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익숙한 느낌의 풍경이 보이니 12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품고 있었던 기대감이 조금씩 풀이 죽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나에겐 관광지 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대부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삶의 터전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어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고속도로를 벗어나 도시로 들어오니 파리였다. 와, 진짜 파리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보던, 그 파리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으로, 어디에서도 한국어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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