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침이 밝았다. 파리에서의 아침을 맞이한다는 기대감에 창문을 활짝 열어재꼈더니, 아직은 차가운 파리의 공기에 놀라 부스럭거리며 이불속으로 숨었다. 룸메들은 어찌나 부지런하던지, 아침 6시부터 룸메들의 핸드폰 알람이 번갈아 울려댔다. 덕분에 나 또한 깼고, 부지런한 룸메들이 먼저 화장실을 써준덕분에 나는 느긋하게 씻고 준비할 수 있었다. 나갈 준비를 마친 방에는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는 습기가 방을 가득 채웠기에 씻고 준비하는 동안 겸사겸사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오늘 하루 돌아다니는 데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화장을 최대한 옅게 했다. 카메라와 보조배터리를 챙겨 들고 선 혜와 함께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 옆쪽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창문과 가깝지만 구석 쪽인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사실 아침을 먹는 타입이 아니라 조식을 먹지 말고 조금 더 쉬다가 내려갈까 하다가,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니 그래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먹기로 했다. 여느 숙소처럼 조식은 뷔페식으로 되어있겠거니 했지만 빨간 식탁보로 덮여있던 테이블에는 뒤집어진 컵뿐이었다. 자리에 앉아 혜와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곧 직원분이 우리를 발견하고선 오셔서 말을 거셨다.
"몇 명이세요?"
"2명이요."
"커피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카푸치노로 두 잔 부탁드려요."
5분 정도 지났을까, 따끈따끈한 빵이 한가득 담겨있는 바구니와 빵에 발라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득 담은 그릇을 들고 오셨다. 마주 앉아있던 혜와 동시에 눈이 커졌다. 빵집에 가서 먹고 싶은 빵들을 맘대로 담아와도 이 정도로 많지는 않겠다 싶었다. 빵을 살짝 만져봤더니 빵에 따뜻한 온기가 여전히 머물러있었다. 아마도 방금 구워 나온 빵이 아닐까 싶었다.
빵을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 올려두고 가셨던 직원분은 이내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시더니 카페에서 스팀밀크를 만드는 통을 우리에게 주셨다.
"카푸치노는 여기 있어요."
커피잔에 이미 만들어진 커피를 담아주거나, 아니면 컵을 가져가서 커피를 내려올 줄 알았던 우리는,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커피를 각자의 잔에 담았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지금 눈앞에 한가득 쌓여있는 빵을 먹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와, 빵 진짜 많아!"
앞에 앉은 혜가 행복을 한껏 들이마신 듯 말했다. 각자 앞에 놓인 접시에 먹고 싶은 빵을 담아 한입 베어 물었다. 한국에서 먹어왔던 빵보다 버터가 많이 들어간 듯해 확실히 부드러웠다. 종류별로 한가득 쌓여있던 빵을 거의 다 비워낸 걸로 기억한다. 파리의 빵은 정말로 맛있었다. 왜 파리의 이름을 딴 빵가게가 한국에 생겼는지 이해되기도 했다. 이런 빵이 파리에 있는 내내 조식으로 나와준다면 조금은 부지런하게 준비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류별로 나온 빵에 취해있을 무렵, 파리 시내로 가는 일행들의 일정이 카톡방에 올라왔다. 유럽에서는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알지 못했기에, 혜와 나는 일행을 따라 시내로 가기로 했다. 선택사항이었지만 만약 함께 다니지 않는다 하면 숙소에서 뒹굴거리다가 숙소 근처만 서성이고 있을게 분명했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조식을 먹고 혜와 함께 로비로 갔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지만 기분 탓일 거라 생각하며 앉아있었다. 우리가 방에서 나올 때 분명 룸메들은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었던걸 봤으니 말이다. 그렇게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원 오빠가 우리를 보더니 물었다.
"너네는 시내투어 안가?"
알고 보니 혜를 제외한 룸메 두 명은 이미 다른 곳을 가기로 정해져 있었더랬다. 당연히 다들 같은 코스로 다니는 줄 알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시차에 적응하는데 허우적대고 있고, 또 일행들과 아직은 서먹한 사이라 우왕좌왕했던 내 정신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머뭇머뭇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원 오빠가 나를 대신해서 파리 시내로 향하고 있는 일행들에게 보이스톡을 걸어주었다. 어디쯤인지, 지금 가려고 하는 애가 있는데 혹시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 봐준 후 친절하게 지하철역을 가는 방향도 알려주셨다.
호다다닥. 저 멀리 지하철 입구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눈 에띠 었다. 일행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문득 우리는 이곳에서 외국인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일행들을 따라 지하철 입구로 들어섰다. 어제 배운 대로 동전을 넣고 목적지를 눌러 지하철표를 샀다. 이게 뭐라고 뿌듯함이 밀려왔다.
지하철을 타고 처음 일행들을 따라 내린 곳은 몽마르뜨 언덕이었다. 정말 언덕이었고, 오르막길을 따라 꽤 오래 올라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가파른 오르막은 아니었기에 길 양옆으로 줄지어있는 볼거리들을 번갈아가며 올라갈 수 있었다. 눈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여전히 어제의 비구름이 멀리 가진 못했는지 몽마르뜨 언덕에서 본 하늘은 구름으로 막혀있었다. 그래도 그 틈새로 새어 나오던 햇빛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도의 언덕만 올라왔음에도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꽤 많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 트인 경치 때문인지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구름이 조금씩 걷혀가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면서 내 기분도 덩달아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 대장에게 몽마르뜨 언덕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곳을 조금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언니들과 함께 사르레쾨르 성당 안쪽을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북적여 활기차던 밖과 달리, 이곳은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건물 뒤편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차분한 분위기의 여운이 남았는지 사박사박걸어가다 보니 큰길 옆으로 또 다른 좁은 길이 나왔다. 새로운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일행들과 좁은 길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자 길 양옆으로 연주를 하고,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에 취해 그 길을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즐거워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행복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듯했다.
여행이란 게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호기롭게 나서다가도,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당황하곤 한다. 여행은 내가 계획한 대로, 내 고집대로 흘러가 주는 법이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변수가 닥쳐올지 알 수 없기에, 그저 흐르는 대로 여행에 나를 맡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결국 여행을 하는 동안 마주했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매번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인생도 여행과 비슷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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