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유난히 무거워 축축 처지는 금요일이다. 뜬금없이 차분해지는 몸과 마음을, 다가올 주말을 위해 흘려보내는 의식을 하는 마냥 따뜻한 물에 홍차를 띄워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보곤 한다.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휩쓸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날. 그럴 때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잠이 깼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나른한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를 발끝으로 툭 건드려본다. 이불 안과 밖의 온도차에 적응이 될 즈음에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파오는데, 그럴 때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면 이불 속에서 느낀 것과는 조금 다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게 꼭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때로는 이런 내가 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햇살이 앞다퉈 쏟아진다. 내 방의 틈새를 햇빛이 매워주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채워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사람을 만나 채워가는 시간과는 또 다른 채움이다. 때로는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는 이 시간이 오히려 행복으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무작정 채워내는 것보다 덜어냄으로써, 모순적이게도 채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혼자라는 것에 무작정 느껴질듯한 외로움을 지나쳐, 이제는 나와 내가 조용히 함께하는 이 시간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함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며들고 있다.
기분은 누군가 정해주는 게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타인은 그저 환경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아마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지탱할 만큼 단단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때보단 조금 더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하고.
아마도 나는, 나 그리고 날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이 키워주고 있었구나. 나는 결코 혼자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구나. 즐거웠던 일이든, 힘들었던 일이든 결국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구나. 아득했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가 된 거구나. 새삼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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