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며 이것저것 끄적여보던 중, 문득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려보아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서 두려움이란 감정이 간혹 나를 덮어버리려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문 두드려오는 소리를 외면하려하지만, 오늘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나갈 때, 나는 멈춰있었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각자의 때가 있다는 이 말이, 오늘따라 왜 이리 유난히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가만히 앉아서 멍 때려보기도 하고, 끄적여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은게 아닐까.
그동안 조금씩 채웠던줄로만 알던 나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알아주는 것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나의 시간들이 덩그러니 놓인 것만 같아, 허한 기분을 지워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시간은 무의미해져버리는구나, 점점 투명해 그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워지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되었지만,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바랐던 그 마음이 나를 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왜 그리 모순적인 마음이 샘솟아 올랐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였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인정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쩌면 그만큼 인정받기 어려운 상대가 나 자신이 아닐까. 다름 아닌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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