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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보여져야만 하는 선택

by 이 장르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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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보여져야 하는 것, 그리고 보여지기 위해 고군부투하던 그날의 흔적들. 그날 찍어둔 영상을 무심히 보고 있노라면 한때 내 친구의 열정도 이렇게 지나쳤겠구나 싶었다. 누구는 우연한 기회로, 또 다른 누구는 몇 년 혹은 그보다 더한 기간을 들여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 사실이겠지만 인생은 운의 연속이다. 우리는 단지 이 흐름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억울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누군가는 이리 쉽게 얻어내는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잠시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저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내가 쉽게 얻어낸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 분명 있겠지.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들이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묻어두기로 하자. 어쩌면 그다지 아름다운 진실이 아닐 수 있으니. 사실 그 이유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에게 표현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 테니 말이다.

모든 직업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대가로 돈을 번다. 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소비해 돈을 번다. 그렇기에 확실히 배우라는 직업은 이미지가 중요하다. 외적인 모습으로 사람이 평가된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 분야는 그런 환경인듯했다. 제작자에겐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고, 오디션은 단지 사진으로 본 분위기가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니.

배우라는 직업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듯했다. 제작자가 많이 찾는 역의 이미지에 자신을 끼워 넣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고수하거나. 전자는 수요가 많아 상대적으로 대중 앞에 서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만의 캐릭터를 잃지 않고 연기를 해나가야 하기에 대중 앞에 설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오로지 배우의 선택에 달렸다.

놀랍게도 오래 버티고만 있으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될 거란 말이 예술계에서는 통용되고 있는듯했다. 버틴다는 것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된다는 말일까, 아니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는 그 상태를 기약 없이 유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뜻일까.

잔인하다. 끝없는 노력에 대한 그 어느 것의 보상도 없이 이어지는, 대체로 암울한 이 터널을 건너야 한단다. 물론 스스로의 선택이라지만, 그걸 알고 있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 혹은 의무감으로 버티기엔 그 오랜 기간 조금씩 파묻혀버리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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