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라는 영화를 통해 악역으로만 생각해왔던 조커라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가 원작자가 의도한 대로 해석되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로 인해 조커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분명 조커가 한 행동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모순이었다. 그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인했고, 공포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분노보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역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분노의 타깃이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악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착했던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억눌렸던 감정을 드러내는 이야기에는 공감하며 열광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고 말한다. 영화 '조커'또한 이러한 패턴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며, 조커에 대해 연민을 작용시켰다.
조커를 사이코패스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사이코패스와 같은 행동들이 간혹 스쳐 지나가지만, 영화 '다크나이트'와 '조커'에서 보인 전체적인 조커의 모습은 사이코패스라고 하기에는 그 분노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존재했다. 다시 말해 영화 '조커'는 사이코패스의 서사가 아닌,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 사회의 한계에 부딪혀 분노를 표출한다는 서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커의 서사에 공감하며 열광한다. 그가 수많은 사람을 무참히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조커를 동경하며, 어떤 이들은 조커의 범죄를 '사회에 저항하는 용기'로 칭하기도 한다. 조커는 영웅을 방해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왔던 악역에서, 한순간에 사회를 향한 인과응보적 서사를 펼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조커를 동경해 이 서사를 일반화시켜버린다면 이러한 환경에 놓여있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조커와 마찬가지로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범죄라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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