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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붉은 거북(The Red Turtle)' 후기

by 이 장르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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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처음 보는 무언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신은 나의 궁금증을 깨워내기에 충분했다. 당신도 나를 궁금해할까.

당신의 탈출을 막은 것이 아니다. 단지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에겐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열 개의 손가락이 있겠지만, 나는 뭉퉁그려진 두 개의 팔뿐이다. 바다로 올라온 당신이 반가웠다.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냈을 뿐인데. 그렇게 흩어진 당신의 흔적을 타고 당신은 모래밭으로 다시 돌아갔다.

당신의 모래밭은 나에게 너무나 어려워, 나의 바다로 또다시 와주길 기다렸다. 간간이 떠오르던 당신의 공간은 나의 노크 몇 번에 무참히 흩어져 버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그곳으로. 당신이 있는 그 모래밭으로.

뭉툭한 나의 두 팔로 모래밭을 헤쳐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신이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왔다. 아, 당신도 나를 알아봤구나.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당신은 나를 수없이 죽였다. 정말 내가 죽기라도 바라듯. 내게 전달된 당신의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그렇게 나는 당신의 손에 죽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눈을 뜨니 무언가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동시에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죽음과 가까웠던 그 순간이 발끝부터 몸서리치며 머리끝까지 올라섰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무작정 도망쳤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에 두려움과 분노 대신 슬픔 같은 무언가로 물들어있던 듯했다. 여전한 두려움을 머금고 당신에게 손을 뻗었다. 그렇게 우린 함께였고, 그렇게 거품처럼 저 멀리 어딘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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