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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선택으로 결정된 나의 운명. 아, 이곳이 나의 끝인 걸까. 사막 한가운데 늙은 나병환자의 병수발을 들어가면서 삶을 마치는 것이 정말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까. 이게 만약 나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이란 것이 원망스러울 것만 같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섰을 때 그 절망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가마 밖에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노랫소리에 맞춰 나의 눈물도 뺨을 타고 내려왔다. 당나귀 따위에 감사하며 나를 팔아먹다시피 시집보낸 아버지는 지금쯤 당신의 주둥이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안중에도 없겠지.
불행 중 다행인지 지옥으로 가는 문턱을 막아주는 이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고, 붉은 수수밭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인듯한 했으나 우리는 양조장에서 다시금 운명처럼 만났다. 그렇게 나는 운명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지 못했던 시대에 운명을 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였으리라.
하지만 행복이란 나의 운명에 어울리지 않는 걸까. 수수밭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질투하듯 굉음을 시작으로 밀려오는 소음 속에 서걱거리던 잔잔한 소리가 잡아먹혀버렸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당신들의 손에 붉은 수수밭은 짓눌려갔다. 수수밭에서 난 붉은빛을 팔아 살아온 이들은 결국 수수밭의 붉은빛으로 돌아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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