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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뚝뚝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곤 진찰받을 때뿐이었으니 말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생각에 설레던 마음이 병으로 받아들여질 줄 그 어린아이가 알았으랴.
철저히 혼자였던 나에겐 늘 엄마가 함께였다지만 또래 친구를 대신해 줄 순 없었다. 유일한 인간관계였던 엄마와의 불안한 관계에서 오던 두려움이 나를 상상으로 숨어들게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가 들고 세상에 나와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갔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무심결에 지나쳤던 지하철역에서 당신을 발견했다. 낮게 엎드려 무언가를 찾던 당신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더랬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나의 상상 속으로 초대했다.
그래서였을까, 두려웠다. 혹여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그 상실감을 견뎌낼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서 당신을 꺼내다 신기루처럼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 섣불리 용기 내지 못했더랬다. 어쩌면 상상 뒤에 숨어,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몰래 꺼내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상상 속에 숨기 바빴던 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현실과 마주했다. 처음으로 당신의 눈에 담겼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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