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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락카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내쫓겨버린 유일한 공간은 곧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리겠지. 기억과의 이별을 실감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란 우리에게 사치일 뿐이었던가.
엄마라는 사람은 우릴 버리고 떠났다. 티브이 속에서는 엄마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비치지만 그건 단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일 테지. 아니, 다른 사람들에겐 엄마라는 존재의 기억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엄마를 만나고 온 동생에게 그 분노가 향해 비수가 되었다.
그렇게 내몰리듯 도착했던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긴 시간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우리가 여기에 앉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 얄팍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각자만의 사연을 하나씩 떠안고 있었고, 그 사연은 지독히도 닮아있었다.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를 품어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집 밖으로 내던져두려던 그 남매의 심보에 화가 났더랬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을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문득 당신의 삶이 가여워졌다.
돌고도는 인생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당신의 앞날이 그에게 두려움으로 밀려든다는 사실은 어쩌면 인간의 모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까울수록 이기적인 선택에 후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당신에게 그러했듯, 나 또한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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