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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미저리(Misery)' 후기

by 이 장르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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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는 온전한 나의 행복이었다. 그녀는 칠흑 같던 나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 미저리를 당신이 죽여버리다니. 나의 남은 삶조차 죽여버린 당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분명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님에도 주저하던 당신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나는 그저 당신의 미저리에 영원을 선물하고선 당신과 함께하려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저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머뭇거리는 당신의 모습은 나를 분노케했다. 당신의 수많은 팬들을 대신하는 나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당신은 그저 당신의 욕심만 채우기 바쁜 여느 작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구나.

공포만이 남은 평화로운 차분함에 숨이 막혀온다. 나를 위한다던 모든 것은 나를 옥죄어오고 있다. 멈춰버린 신체 속에 갇혀 해낼 수 있는 거라곤 당신이 시키는 손가락질뿐이다. 삶은 결코 원하는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나 잔인할 일인가 싶었다. 나를 살린 줄로만 알았던 당신의 손이 나를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갈 줄이야.

삶의 연장선에 놓인 줄 알았던 만남은 다름 아닌 새로운 지옥이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조차 맘껏 거닐 수 없는 처지는 죽음보다 나은 삶인가라는 의문 속에서 당신의 기분에 의해 하루 동안 수십 번의 고통 속을 오가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갈 순 없다. 이전까지의 나를 부정하며 고함치는 이의 그림자가 더 드리워지기 전에 이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과연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긴 할까.

돌아갈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날씨도 확인하지 않고 집을 나섰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홀로 남겨지길 원했던 나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예상치 못한 고함에 한껏 움츠러든다. 얄팍한 나무 문 따위는 나를 지켜주기엔 역부족이었구나. 이곳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할까. 끝없이 넘어지는 내 모습으로부터 무기력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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