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도망치듯 달려온 곳이다. 평생을 달고 다녔던 이 고통을 너에게만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를 쥐어짜면서까지 일을 했다. 너는 모르겠지. 아니, 계속 모르길 바란다. 고통은 나의 몫이니.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생각했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을 때, 그리고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연민할 수 있었다. 하나둘 사라져가는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당신의 비밀을 지켜주려 했다.
조급함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외면하게 한다던가. 당신의 삶을 연명하기 위해 나의 전부를 앗아갔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당신은 그랬다. 죽여달라는 당신의 몸부림에,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는지에 대한 원망이 방아쇠를 당기게끔 했다. 사랑보다 돈을 앞세우기 급급했던 당신의 결혼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다. 꾸깃거리는 지폐들이 겹겹이 쌓여있던 좁디좁은 틴케이스 속에 버텨왔던 삶을 당신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당신의 두려움을 안다. 두려운 이는 나 혼자로 족하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두려움으로 내몰고 싶진 않은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나는 이곳에 서있다. 그 어느 곳에도 자비란 없었고, 그들은 그들과 같이 나고 자랐던 그 사람에 공감했다. 절실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너의 미래가 더 절실했다. 가난을 물려줄지언정 어둠까지 물려줄 순 없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희미한 빛을 의지하며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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