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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화차' 후기

by 이 장르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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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삶이다.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니. 이곳에서 벗어나기에 난 너무나도 어렸고 연약했다.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삶은 결국 이렇게 남았구나. 타인을 향한 분노라기보다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남들처럼 숨 쉬고 밥 먹고 거리를 거니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일인가 싶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냐만 원치 않은 대물림에 도망자의 삶을 물려받았던 자신의 처지를 바꿔보려는 나름의 발악이었으리라. 누군가를 내 공포로 밀어 넣어 얻은 새삶이었다. 타인을 대가로 치른 삶이 얼마나 가겠냐마는,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이 불안한 행복에 점점 집어삼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했다. 어쩌면 그렇게 사라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한낱 이름 세 글자 뒤에 숨어 추악한 모습을 숨기려던 내가 어떻게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타인을 기워내 걸쳐둔 하얀 원피스조차 구겨질세라 치맛단 끝을 손으로 잡고 꾹꾹 내렸다. 수없이 구겨진 나를 조금이라도 가릴 수만 있다면야.

당신은 알까. 아니, 어쩌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당신은 영원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겠지. 당신에겐 그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일어날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존재였다, 나는.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타인으로 돌아가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당신은 좋은 것만 보며 구김 없이 살아갈 테고, 세상의 악취에 묻혀 한줄기의 빛조차도 사치였던 나를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우린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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